노스탤지어

by gomer

2004년도와 2005년도 그 어디 즈음일 것이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병아리같은 나이, 작은 수학 학원에서 만났다. 드라마나 영화의 이야기처럼 풋풋한 학창시절도 이제 와 미화라도 해볼 만한 사진 한 장 없었다. 칙칙한 교복을 입은 채로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 도착해 수업을 듣고, 수학문제를 풀었다. 길고 긴 수업 시간의 쉬는 시간에는 모자란 잠을 청하거나, 근처로 군걱질을 하러 갔다.


간간히 몇몇이 농담을 지껄였을 뿐 서로 오가는 대화도 드물었다. 하루에 여섯시간 내지는 일곱시간 때로는 주말도 5년에서 6년의 시간을 크리스마스 이브도 새해 전날밤도 함께 보냈다. 누군가에겐 서로가 라이벌이었을 수도 있지만 나에겐 아니었다. 마치 같은 배를 탄 군인 같다고 당시 나는 생각했던 것 같다.


시간이 더 흘러 종종 만났다. 약간의 책임감, 순전한 타의, 혹은 이미 내버린 회비 때문에 찾아가는 지루한 동창회같았다. 함께 나눌 공통의 추억거리도 없었고, 현재를 함께 살아가지도 심지어 같은 꿈을 꾸지도 않았다. 어른을 흉내내 돌아가는 세상 얘기에 술잔을 기울이기엔 아직은 세상이 반짝거렸기 때문에, 결국 연애 상담이 도마에 올랐고 서투른 분석들이 오갔다. 집으로 향하는 전철 안에선 나는 우리는 왜 자꾸 만나는 걸까에 대해 생각했다.


반짝거리는 것으로 오인했던 시절이 끝났다. 낙오와 실수, 또 죄책감이 반복됐다. 일년에 두번 내지 한번 만나 맨정신으로 헤어지는 법이 없었다. 이어지기를 여덟번째 해, 일상이 이미 스며들었을 알았다. 조부모님의 장례식장에 가고, 부모님의 안부를 여쭈었고, 서로의 애인을 알고 있었으며, 나아가 예비남편을 소개받았다.


일년만에 찾은 서울, 종로의 작은 이자까야에 여섯명이 모여앉았다. 그 해 겨울에 예정된 친구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였다. 누군가는 살을 찌우고 누군가는 볼이 헬쓱해지는 등 시간의 무게가 느껴졌다. 나의 까탈스런 인생에 가족이 아닌 누군가, 일하는 분야가 같지도, 취미가 같지도, 그렇다고 성향이 비슷한 거 같지도 않은 이들이 지금껏 이토록 오래 자리할 줄이라곤 미처 몰랐다. 간간히 오가는 연락속에 문득 생각하기를, 더 오랜 인생을 살다 헐벗은 육체가 되어 땅으로 돌아가기 직전까지, 생각보다 노후는 외롭지 않을지도 모른다.


/2015.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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