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면서 느끼는 것1

by gomer

석사 두번째 학기에 들었던 논문쓰는 법에 대한 수업의 강의자는 지리학을 전공해 전세계를 떠돌아다니다가 이제는 화산도 지진도 해일도 전부 질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한국, 그중에서도 더 안전한 대전에서 노년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는 미국인 노교수였다. 강의의 목표는 학생들이 영어로 논문을 작성하는 데 있어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다들 쉽다고 하는 그 과목을 나는 유독 힘들어하며 들었는데, 연구 주제가 정해진 것도, 딱히 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는 것도 아니라 서론 한 단락을 적는데도 적었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빈 컴퓨터화면에 과자를 몇봉지씩 비워가며 우울해하곤 했다.


첫날부터 숙제를 해가지 못해 빈손으로 갔는데, 교수는 너가 글을 제출하지 않으면 나는 너에게 F 를 줄 수밖에 없다고 단호히 말해주었다. 그리고 왜 숙제를 못해왔는지에 대해 물었다. 연구주제가 정해지지않아서 어떻게 뭐에 대해 써야할지 모르겠다는 나에게 전공은 뭔지, 어떤 연구에 대해 관심이 있는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연구라면 주제가 조금 맞지않아도 괜찮으니 하고싶은 것에 대해 일단 한번 써보라고 진심으로 말해주셨다. 울것 같은 마음으로 교실문을 나섰다.


왜일까, 그의 작은 충고와 관심에 앞뒤도 맞지않는 실체도 없는 것에 대해 몇장이고 썼다. 쓰면서 또 생각했다. 세상에 굳이 교육의 목적이란 게 있다면, 그것은 누구가 더 나은지를 줄세우는 것이 아니라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최대한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비용대비 생산성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로 이어지지 않을까.

/2013. 5. 4.


4월, 동생에게 까페올래? 하고 초대했다. 단박에 거절당하고 십분 뒤, 동생이 잠시 그리로 들릴게 하고 찾아왔다. 그 까페 특유의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에서 떡넣은 와플에서 어떻게 잘라야 떡을 먹을 수 있을까 우물쭈물하는 나에게 그는 그럼 떡을 사먹었어야지 하고 핀잔을 줬다. 아래는 그리고 나눈 대화의 일부다.

동생은 자신의 고민이 얼마나 사소한지를 강조하며 말했다.

언니, 내가 물어보고 싶은 건, 나는 지금 하고 있는 게 마음에 들고 또 잘 할 자신도 있어. 근데 나중에 먼 훗날에 갑자기 다른 게 하고 싶어지면 어떻게 해? 변리사나 의사나. 그 때 내가 내가 하고 싶은 길로 갈라설 수 있을까? 나는 그게 좀 궁금해.

그 땐 내 생각을 알맞게 표현할 수가 없어 무관한 이야기만 늘어놓다 자전거 나란히 타고 학교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난 한달 동안 그의 질문이 떠오를 때마다 내 마음에 떠오른 잡념들을 끼워맞춰 이렇게 쓴다.

진로고민이라 할 건 아니고 그저 궁금할 뿐이라고 몇번이나 강조했다. 몇년 전, 대학교 졸업반 언저리의 나는 내가 무슨 일로 먹고 살며 또 그것이 날 얼마만큼이나 행복하게, 경제적인 의미와 정신적인 의미 두가지 측면에서 날 얼마만큼이나 행복하게 할 수 있는지, 그래서 내 삶을 지탱하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다른말로 하면 진로고민이었던 것의 무게에 깔려죽을 것만 같았다. 어딘가 말하기에도 너무 중요했고, 또 무엇보다 나를 잘 모르겠어서 적당한 문장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꽁꽁 싸맨 탓에 불안하기만 했다. 그렇지만 사실은 좀더 가볍고 산뜻하게 개구진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무엇보다 호기심, 그저 궁금할 뿐이라는 내 동생이 부러웠다.


어떤 것도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왜 살아가지 못했을까? 비교하고, 혼자 주눅들고, 열등감에 허우적거리고 고통스러워했던 바보같은 여름, 그 기억속의 내가 후회스럽다.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가볍고 산뜻하니까, 나와 다르게 그걸 벌써 알고 있는 내 동생이 가는 길이 질투나고 부럽다.

/2013. 5. 26.


석사과정에서 필수인 수업을 들었다. 교수님은 매우 졸려운 목소리로 칠판에 하나 하나 필기하며 수업하는 스타일이셨다. 고전적인 태도의 그 강의가 그만큼 고전적인 그 수업의 컨텐츠와 잘 어우러져 마치 오래된 구전에 귀기울이는 마음이 되었다.

사실 대학강의는 굳이 들을 필요는 없다는 데 동의한다. 강의를 듣는다는 것은 학생의 취향에 불과한데 나에게 굳이, 그 아침시간에 그날 논의되는 것들을 전부 소화해내는 것도 아니면서 출석하는 것은 강의자의 눈을 빌려 그 사람의 흐름에 따라 서술된다는 의미에서 즐거움이 있다. 한마디마디마다 귀기울여 듣지 않으면 이 사람이 컨텐츠를 풀어나가는 방식의 정교함에 감동받기는 쉽지 않다. /2013. 6. 14



오후 한시부터 여태껏 암장에서 있었다. 운동은 아주 조금하고 텅 빈 바닥에 한참 누워 있었다. 아빠를 따라온 천둥벌거숭이 어린애가 빨빨거리며 돌아다녔다. 놈은 아직 인격이 형성되지 않은 꼬마짐승이다. 아이를 보고 있자니 나의 몸뚱아리가 너무 오래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려 스무해 하고도 다섯해를 더 살아온 몸이다. 나쁜 생각도 너무 많이 했고, 나쁜 음식도 너무 많이 먹었어. 그런데 우린 또 한참을 더 살아가야 한다니 영생이란 얼마나 지루하고 고독한 것일까 매체에서 그려지는 뱀파이어의 광기어린 모습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


석사과정 한 학생이 지도교수와의 불화로 인생을 그만두었다는 소문이 암암리에 퍼지고 있다. 사실의 여부는 모르지만 슬픈일. 동생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떨었다. 나에게도 분명 자살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이 연약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다니던 때가 분명 있긴 했던 것 같은데. 이제 난 어떤 스스로의 의지가 개입된 죽음을 접하면 그들의 존재를 또 그것의 존재를 부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 죽음에 대해 매우 쉽게, 그들이 부적응자라던가 사회의.. 라는 듯 그들의 잘못인 양 힐난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대씩 두들겨 패주고 싶다.

/2013.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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