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forShe
1. 한국의 한 칼럼니스트는 <고종석의 편지>를 매주 연재했다. 오바마, 또 교황에게 마치 신문고처럼 의견을 전해왔다. 그는 UN의 페미니즘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89년생 여배우를 향해 편지를 썼는데, 이는 일파만파 퍼졌다. 인권과 관련한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ref: http://www.huffingtonpost.kr/daymoon-/story_b_8174146.html)은 고종석이 엠마왓슨에게 제기한 의문의 의도를 묻는다. 그가 엠마왓슨에게 물어보는 내용은 페미니즘의 역사에 있어 이미 논의되어왔던 문제로 이를 굳이 엠마왓슨, 나아가 유엔, 즉 인권 전문가에게 지적하는 그의 편지의 의도를 물었다. 사실 그 대상은 엠마왓슨은 아니었고 대한민국의 여성이지 않느냐는 것을 제기하며 이 칼럼에 대한 비판이 본격으로 시작된다.
그래서 대한민국에 살아가는 이성애자이며 중년 남성인 이분은 대한민국의 여성에게 페미니즘에 대해 가르칠 수 없기 때문에 까였다. (관련해 고종석의 팬이라는 블로그에서는 고종석님께선 "그냥 내 팔자야" 했다고 한다. 이제까지 페미니즘 및 여성권이 사회에서 무시되어왔던 만큼 열심히 생각하시고 적은 칼럼은 아니셨던 모양이다.)
아래는 허핑턴 포스트에 실린 노정태 칼럼니스트의 글을(-) 발췌했고 보면서 떠오르는 단상(*)들을 적었다. ref: http://www.huffingtonpost.kr/jeongtae-roh/story_b_8183334.html
- 페미니즘은 크게 세가지의 흐름으로 나뉜다. 1세대 페미니즘은 참정권을 중심으로 기본권 보장을 위한 운동이었다. 2세대에 이르러 정치적 평등 외에도 사회적 평등 요구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는 페미니즘의 3세대이다. 이 때부터는 페미니스트를 표방하는 여성의 수가 급격히 줄었고, 사회적으로 페미니즘 및 여성성에 대해 논하기를 꺼리기 시작한다. 이유는 칼럼의 요지였던 "제 1세계 백인 여성이 페미니즘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 에 대한 의문 과 동성애, 성소수자에 대한 개념이 생기고 여성성 이상의 성적인 차이의 논의를 필요로 하였기 때문이다. 전자에 대해 UN 및 엠마왓슨이 간과했을리 없고 HeforShe는 이에 대한 다음단계로 구상된 무브먼트다.
- 그래서 2014년도 유엔은 세계적 여배우를 내세워 페미니즘을 논하면서 <여성>과 <남성>을 다시 같이 가져왔다. HeforShe운동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이 운동의 주체는 남성이다. 페미니즘에 대해 가르치려 드는 남성들이 물의를 빚고있을 때 같은 남성의 지적과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다. 인류의 반인 남성이 모두 동질적 무리가 아닌만큼, 자신이 속한 젠더의 집단이 아닌 본인의 의사에 따라 성별이 다른 집단의 위치에 서달라."
* 조지포스터는 몇년 전 시상식에서 커밍아웃을 했다. 그 자리에는 그의 제일 친한 친구가 있었고 연설 도중 조디 포스터는 그에게 감사를 표했고 이 사람은 휘파람으로 응답했다. 할리우드의 마초로 불리는 이 남자, 멜 깁슨은 조디포스터의 행보를 지지했다. 그들의 특별한 연대에 눈길이 갔다.
- 70년대 내지 80년대, 한국사회에서는 운동권 남학생들이 여자후배에게 접근하며 너는 성적으로 해방된 주체니? 질문을 던지고 운동권오빠들이 여성에게 페미니즘을 가르쳤다.
* 운동권 대학 시절에 대한 여성작가의 소설 속(권여정의 <레가토>와 김형경의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에서도 볼 수 있다. 지난 장미대선이 끝나고 어느 예능에선가 유시민이 당시 운동권 여학생들은 남학생들 하는 일에 비해 옥바라지정도의 개념에 지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 김연수의 소설은 정말 아름다운데도 매번 그 속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에 끝까지 읽기가 힘들다. 특히 심했던 건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아기곰처럼 활달하고 자유롭게 그려진 여성에 대한 묘사가 남성의 시선안에(남성작가이니까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머물러 내 안에선 살아 움직이지 못했다. (그게 대략 5-6년 전이라 그런데 요새 다시 도전해볼까 한다) <네가 누구든 언제나 외롭든>을 읽던 기억을 떠올리다가 문득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이 연상이 됐다. 비슷한 분위긴데 미도리와 나오코는 와타나베에 의해 서술되는데도 생생하게 살아 움직여. 왜 그럴까? 어쩌면 내가 일본인이 아니라서 예민하지 않게 다가오는 걸 수도. 이는 위 다른 단락들처럼 김연수 작가의 인물 서술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남성 작가의 시야에서 서술되는 여성의 이미지에 쉽게 공감하기 힘들다라는 맥락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화자가 한 여성을 자유롭다 그래서 아름답다 감탄하는데 나는 그 여성이 하나도 자유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모습에 감탄하는 남성 화자가 되려 짜증나 읽다 덮어버렸다.
* 성적으로 해방된 주체니? 라는 문장을 읽었을때 버젼만 좀 달라진 오빠들을 방송화했던 마녀사냥을 떠올렸다. 마녀사냥이란 프로그램이 처음 나왔을 때는 13년도, 당시 남자 친구들이 매우 이성적으로 이 예능이 사회에 주는 변화에 대해 말했던 것, 또한 4명의 남자 MC들이 당신들의 프로그램의 자랑으로 말했던 것은, 이제야 이런 이야기들이 음지에서 양지로 나온다는 거였다. 나는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당최 무슨 이야기들? 모든 사람이 섹스에 대해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게 사회가 나아 가야하는 방향성의 무게를 지닐 정돈가? 13년도였다. 당시 사제관계에서 비롯된 성추행 사건도 제대로 처벌받지 못했다. 성에 관련된 문제와 갈등에 있어 피해자는 마녀사냥감이 되는 일이 잦았다. 이에 대한 처벌도 사회에 대한 인식도 지금보다 무지할 정도로 낮았다. 남성과 여성이 얼마나 성관계가 재밌는 것인지를 대놓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실제로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 덕분에 성관계에 대해 쿨해야 되고 말하는 데 거침없어야 하는 여자에 대한 이미지가 생산 및 배포되었고 그 이미지를 은연 중에 강요받거나 또 소비해야했던 여자후배들이 분명 많았으리라. 알게 뭐더냐, 개인의 취향일 뿐이다. 그 프로그램이 컨텐츠 깊이의 한계로 폐지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진다.
2. 2001년도 노벨생리학 수상자는 지난 서울 세계과학기자대회에서 여성과학자에 대한 비하발언 이후 수많은 사람로부터 비난받고 그의 학술적인 커리어까지 의심받았다. 이 때 과학자, 프로그래머, 그리고 엔지니어들이 그의 #DistractinglySexy를 사용하여 조롱했다. 발언자는 논란 이후 "단지 농담을 한 것 뿐"이라고 변명했다.
/2015.09 기록
*정리하고 보니 15년도에 텔레비전 너무 많이 본 것 같다.......:-( 오마인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