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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뤼메 Nov 28. 2018

좋은 질문이란 무엇일까

질문에도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일까?

 강연이 처음이라던 연사님을 모시고 50명 내외의 인원이 함께하는 강연을 진행한 날이었다. 강연이 처음이라는 말처럼 처음 만난 연사님의 얼굴에는 강연 전부터 식은땀이 흘러내렸고, 1.2L 물 한 통을 거의 다 마시고도 목이 타는 듯 보이셨다. 그래서 덩달아 강연을 준비한 우리가 같이 긴장되기 시작하였다. '이 강연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의 걱정은 강연이 시작되자 거품처럼 사라졌다. 그렇게 긴장하시던 연사님이었지만 막상 토크를 시작하자 입담이 넘쳐 강연이 무척이나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강연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강연이 처음인 연사님을 배려하여 보통 1시간 30분 토크-30분 Q&A를 받는 시간을 조금 조정하여, 1시간 토크-1시간 Q&A로 진행하게 되었다.


 1시간을 Q&A로만 채울 수 있을까? 사람들이 질문을 하지 않으면 어쩌지?라는 걱정 기우였다. 1시간이 부족할 만큼 사람들은 끊임없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질문 다음 얹어지는 위트 있으면서도 진실된 답변. 그래서 Q&A 시간 역시 강연 시간만큼 모두 많이 웃고 떠들던 시간이었다. 아니, 그런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했었다. 만족도조사 결과지를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질문 수준이 낮아서

들어줄 수가 없었습니다


만족도조사에서 이 멘트를 처음 읽었을 때는 내가 잘못 본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누가, 어떤 사람이, 어떤 포인트에서 질문 수준이 낮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 '작가님이 그린 작품 중 제일 마음에 드는 작품은 어떤 건가요?', '작가님은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어디서 받으시나요?', '슬럼프 극복 방법은?'


와 같이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보편적인 질문들 때문에 강연장에서 나온 질문 수준이 낮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 '제가 지금 어떤 작품을 만들어보려고 하는데 해주실 수 있는 조언은?', '이 분야 신입으로 알 수 없는 부분이라, 프리랜서로 일할 경우 어느 정도로 페이를 측정해야 하나요?'


와 같이 사적인 궁금증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물어봤기에 강연장에서 나온 질문 수준이 낮다고 생각한 것일까.


처음에는 이 만족도조사지를 보고 화가 났다. 작성자 본인은 얼마나 대단한 질문을 하는 사람이길래 이런 말을 함부로 내뱉을 수 있는 걸까.  이렇게 적은 작성자는 Q&A 시간에 얼마나 대단한 질문을 했을까. 우리나라는 질문을 안 해서 문제지, 질문을 하는 자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그러다 문득 '인생을 바꾸는 질문하는 법' 등과 같이 '질문의 공식'이라는 것은 없지만 '좋은 질문'이라는 것이 있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질문? 나쁜 질문?

올바른 질문? 잘못된 질문?



 질문에는 답이 없다. 알고자 하는 바를 얻기 위한 물음이기 때문에 질문에 공식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질문에도 공식과 답이 있다고 배워왔다. 가장 흔한 것으로는 면접장에서 해야 하는 마지막 질문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아버지! 질문에 정답이 있다면 알려줘.

 그럼에도 나는 꿋꿋이 생각해왔다. 질문이라는 것은 내가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질문이라는 것, 나쁜 질문이라는 건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을 깨뜨리는 사건이 또 발생했다. 또 다른 강연을 진행할 때였다. 그 유튜브 동영상을 제작하는 분의 강연이었는데, 이 강연장에서 '유튜브 규제'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나는 그 질문을 들으며 이 세계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생각하는 규제란 어떤 것인지 호기심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때 MC가 말했다.


'아니, 지금 연사분이 법을 만드시는 분도 아니고 질문 수준이 너무 높네요. 좀 가벼운 질문으로 밝게 Q&A를 진행하려고 했는데 질문의 무게가 상당합니다. 이 부분은 연사님이 아니라 법을 만드는 분에게 물어봐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요.'


그 순간 나는 또다시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도 어딘가에서 멍청한 질문을 하고 다닌 것일지도 몰라.

당연히 알아야 하는 걸 질문해서 주변을 '갑분싸'하게 만들었던 건 아닐까.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간다 했는데, 나도 괜히 입을 떼서 반도 못 간 게 돼버린 건 아닐까.



질문이 중요한 시대


 우리는 "답을 찾는 능력"을 넘어 "질문하는 능력"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질문이란 왜 중요한 것일까.


 그건 당연히 내가 한 질문이 답변의 방향성을 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정말 필요한 답을 찾아낼 수도 있지만, 이 말을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질문한 것 이외의 다른 답변은 들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원래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줄 생각이 있던 사람이라도, 한 가지를 콕 집어 '이건 뭐예요?'라는 질문을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그것에 대한 답변만 하기 마련이다. 질문에 갇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무언가의 정답을 찾는 것보다 내가 필요한 답을 들을 수 있는 '질문'을 하는 능력을 더욱 중요시 여기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도 '좋은 질문'보다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많은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것을 반복적으로 묻는 질문이 아니라면 나는 모든 질문은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질문에 따라 내가 받을 수 있는 답도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분명 누군가는 '우문'을 하는 나에게도 '현답'을 해주며, 잘못된 질문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주기도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질문에 질문을 거듭하여 답에 가까워져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질문에 '수준'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질문'에 갇히기 전 이미 '나의 생각' 안에 갇혀버리고 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말하지만 나 역시 질문하는 걸 두려워한다. 있어 보이는 질문을 하고 싶은데 그런 질문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그냥 입을 다무는 쪽을 택한다. 그리고는 혼자 골머리를 썩힌다. 미처 하지 못한 궁금증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내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제대로 묻지 못한 것에 대한 정답 찾기는 대게 승산 없는 삽질로 이어질 뿐이다.


 그렇기에 결국 나도, 너도, 우리 모두가 쉽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해선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게 좋은 질문인지 나쁜 질문인지, 올바른 질문인지 잘못된 질문인지는 일단 나중으로 미뤄두고 말이다.

누구나 당당하게 질문할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리며, 우리 모두 풋 져 핸즈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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