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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뤼메 Jun 13. 2019

판도라의 상자를 절대 열지 마세요

넷플릭스 <블랙 미러 시즌1 - 1화 국가>를 보고

친구들과 장난 삼아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일명 '만약에'로 시작하는 가상내기인데


- 만약에 너 바퀴벌레 가득한 방에서 하루 종일 있으면 100억 준다는데 할래?

- 만약에 1년 동안 컴퓨터, 핸드폰도 없이 군만두만 먹을 수 있는 방에 갇혀있다 나오면 1억 준다는데 할래?


와 같은 대화이다. 몸에 직접적인 상해를 입는 대화는 아니지만, 뭔가 실제로 하라고 하면 절대 하기 싫은 일들을 물어보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죽도록 하기 싫은 행동이지만 그 행동을 할 동기가 될 수 있을 만큼의 돈을 준다는 조건도 함께 걸어보는 것이다. 이런 가상내기를 하다 보면 실제가 아닌데도 진지해진다. 1억 가지고는 안 한다고 했지만 100억 정도는 '해볼까?'라는 마음으로 바뀌는 순간의 묘미. 또 여기서 중요한 건, 이 가상내기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지만 대화에 참가하는 주체자들은 모두 알고 있다. 이런 대화는 사실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고, 내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런데 이런 가상내기가 실현되는 곳이 생겨났다. 아프리카TV와 유튜브 플랫폼의 등장. 즉 사람들에게 자극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면 돈을 벌 수 있는 플랫폼의 등장이다.

자극적인 내용은 언제나 흥미롭다

허무맹랑한 말이

실체화되는 순간


'아니, 실제로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라는 생각이 드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여러 규제로 수위가 조절되고 있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자극적인 내용의 동영상 콘텐츠는 지금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보통 이런 동영상의 시작은 이러하다. '얼마를 쏴주면 진짜로 내 몸에 불을 붙여보겠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생각한다. '에이, 설마 진짜로 하겠어?'. 그리고 이런 허무맹랑한 말에 불을 붙이는 사람들이 있다. '니가 원하는 돈 줬으니까 빨리 니가 한 약속을 지켜라.' 이때가 되면 말은 실체를 가지기 시작한다. 점점 더 많은 대다수가 이 말을 지켜볼수록 말은 실체화되어가고, 이제는 자신이 내건 허무맹랑한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는 판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설마 진짜로 하겠어?'라는 말은 실제로 이루어진다.


 약속이 실행된 이후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궁금해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건 '과연 그 허무맹랑한 말을 진짜로 실행하는가?'까지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동영상이 끝나면 몰려들었던 사람들은 해산한다.

누구보다 빨리 보고 사라지죠!

절대로 열어서는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에서도 나오지만, 원래 사람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고, 보지 말라고 하면 더 보고 싶은 법이다. 애초에 판도라에게 '절대 열면 안 되는 상자'라고 말하며 건넨 이유는, 이 상자를 열어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절대 하면 안 된다'라는 말의 힘을 이렇게 강력하다.


<블랙미러 시즌1-1화 국가>편에는 이런 선택과 '절대 하면 안 되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준다. 애초에 총리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선택권을 가진 사람들은 대중들이었다. 대중들은 총리가 그 행위를 하도록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었고, 영상을 볼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선택지라면 대중들이 넘겨받은 상자는 '판도라의 상자'였고, 대중들은 한치의 망설임 없이 상자를 여는 쪽을 택한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 대한 죄는 도대체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 '절대 열지 말라'며 상자를 건넨 사람?

- '판도라의 상자'를 넘겨받은 사람?

- 대중의 선택에 따라야 하는 사람?


나는 절대 열지 말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넘겨받고도 상자를 열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혹은 대중의 선택의 반하고 하고 싶지 않은 행동을 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그 어느 것도 내 일상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으리라 믿는, 아니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야기.


<블랙미러 시즌1_1화 국가>를 보고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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