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블랙 미러 시즌1 - 2화 핫샷>을 보고
지금은 잘 보지 않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빼놓지 않고 챙겨보던 시절이 있었다.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수많은 현업 가수를 배출해낸 <K-POP스타 시즌1>이다. 여기서 내가 응원했던 참가자는 '이정미'라는 인물이다. 그녀는 이하이, 박지민 같은 눈에 띄는 참가자들과 달리 크게 눈에 띄는 참가자가 아니었다. 당시 그녀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종합해보자면 노래를 못 하는 것은 아니나 뛰어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라는 게 주요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녀는 매 평가 순간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듯 합격의 문을 열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는 일이 발생하였으니, '수펄스'라는 그룹원으로의 등장이었다. 오디션프로그램에서 결성된 4인조 그룹인 수펄스는 합이 좋았다. 거기다 <K-POP스타 시즌1>에서 심사위원의 주목을 받는 박지민과 이미쉘이 포함된 그룹이라는 점에서 그룹원이 발표되자마자 사람들과 심사위원의 관심을 받았다. 수펄스의 무대는 사람들의 기대를 뛰어넘을 만큼 완벽했고, 자연스럽게 그룹원인 이정미도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했다.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이제 그녀가 최후 10인에 들지 못하고 떨어질지 아닐지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녀가 떨어졌다.
그녀가 최후의 인원에 선발되지 못했을 때 내 마음이 쿵 했다. 결과 발표가 끝나고 심사위원들은 으레 '다음에 또다시 만날 수 있길 바라며'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고, 떨어진 참가자들이 무대에서 내려가려고 몸을 틀고 있었다. 와, 진짜 끝난 건가 싶었다. 그때 그녀가 손을 번쩍 들었다.
총 10명을 선발하는 TOP10 생방송진출자 중 아직 한 명이 호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9명만 뽑아놓고 추후 1명을 더 선발할 계획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TOP10 중 9명만 호명되었다면 자리가 1개 남아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 그녀는 모두가 등을 돌려 무대를 내려가려 할 때, 남은 티켓 1장을 얻기 위해 손을 들고 기회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TOP10에 들었다.
그리고 나서의 반전은 없었다. 그녀는 TOP10 생방송진출을 했지만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최종우승을 하는 반전은 생기지 않았고, 지금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오디션 참가자가 되었다.
당시 '이정미'라는 오디션참가자가 보여준 간절함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대다수는 이렇게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노력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 실력이 있는 게 중요한 거야.' 나도 알고 있다. 진짜 실력자는 결과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남들이 볼 때 안쓰러울 정도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도 좋지 않은 결과물을 들고 오는 인물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가끔은 '난 결과로만 판단해'라는 말이 너무 잔인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좋은 결과물이 아니라면 무조건 그 과정까지 부정당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게 결과물만 좋다고 말하는 일들은 과연 진짜 결과물이 좋은 일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결과물이 좋으면 만사 오케이라면 포르노스타가 되기로 한 아비를, 간절함을 상품화한 빙을 보며 불편한 감정을 느껴서도, 부정해서도 안될 것이다.
지금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잘 보지 않는다. 예전에는 내가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매일매일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참가자가 된 기분이기 때문이다. '너의 매력을 보여주지 않으면 떨어질 거야!'. 그렇게 매일매일 반강제적인 현실판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불합격입니다!'라는 문구를 보며 무대에서 내려가는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떨어진 나는 가차 없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간다. 주목받아야 하는 공간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잊히는 건 언제나 슬픈 일이다. 그래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누군가가 떨어지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그렇기에 그들이 프로그램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도 보기가 쉽지 않다.
아마 내가 매력쟁이라 사람들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사람이었다면, 계속 오디션 프로그램을 볼 수 있을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