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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der Jan 25. 2024

단무지를 아시나요

사이다가 되고 싶었는데

예전 직장생활이라는 것을 처음 했을 때 나의 사수는 많은 사람들을 명확한 캐릭터로 정의하여 이해를 도와주었다. 당시에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한 사람)', '똑게(똑똑한데 게으른 사람)', '멍부(멍청한데 부지런한 사람)', '멍게(멍청하고 게으른 사람)' 등으로 표현하는 것이 유행한 적도 있었다. 


나의 직장에서 최악의 캐릭터는 '단무지'였다. 단무지는 대학 다닐 때에도 많이 들어본 선배들의 성격 유형인데 '단순, 무식, 지랄'의 모든 극단의 성격을 모은 만나기 가장 싫은 최악의 인격을 가진 인간이었다. 대화를 하는 동안 이 모든 것이 대화가 가능하다고 착각한 나의 잘못이었다는 후회를 불러오며 인생의 무상함을 알게 만드는 사람들의 유형이었다. 이들의 주특기는 '고장 난 라디오'와 같이 자신의 말을 반복해서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 조직에 '단무지'로 유명하여 저런 사람이 승진하는 것은 인사평가가 잘못되었다는 반증이라고 믿고 있던 나를 비웃든 '단무지'는 승승장구하였다. 사내정치를 잘하여 모든 모임의 총무를 자처하고 술자리마다 참석하는 열정을 보이더니 윗사람에게는 뚝심 있게 자신의 업무를 처리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리 조직의 인사평가도 별다를 게 없었다. 그저 가만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면 가마니로 보고, 자신의 권리를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권리의 일부를 보장하는 그저 말 나오지 않는 선이라는 구조였다. 


우리 조직의 '단무지'는 무언가에 꽂히면 평소와 같이 타인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그 말을 반복해서 했다. 분이 자주 쓰는 말은 세간에 많이 떠도는 이야기를 대충 자신의 맘대로 편집하여 주장하였다. 상식이 없는 그는 타인에게 상식에 맞느냐고 따지길 좋아했다. 자신의 편향적인 고집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는 느낌이었다. 초등학교 짝을 괴롭히는 재미에 학교에 등교하는 못난이는 여전히 성장하지 못하고 우리 조직에 '단무지'가 되었나 보다.


경력이 많아도 여전히 배워야 한다 p.185

실패하는 사람은 책을 한 권 읽고 세상 진리를 모두 깨우친 듯 행동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은 바로 그런 사람에게 해당한다. 많이 공부할수록, 배우려고 노력할수록 자신이 아는 지식이 극히 부분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왜 그 사람은 하는 일마다 잘될까》(김재성, 평간, 2023.09.26.)


무식하면 용감하다. 혹시 나도 그에게 은연중에 물들어 이상하게 변한 부분은 없는지 다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소심하다. 용감해지기는 글렀다.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배우고 살아야겠다.  '단순·무식·지랄'의 '단무지'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며, 식사 중 느끼함을 사라지게 하는 단무지나 막힌 속을 뚫어주는 사이다가 되는 건 어떨까 생각한다.

"내가 하는 행위가 타인에게 이롭지 못한 일이 있는지 돌아보며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면 나의 뒷모습이 당당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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