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

눈 오는 거 싫어합니다만

by Jeader

올해 첫눈이 내렸다.


"눈은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야!"

군대에서 처음 맞이하는 함박눈에 선임은 나에게 말했다. 눈은 군대에서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라고 알려 주었다. 산 밑에 있는 부대에 내리는 함박눈은 정말 말 그대로 펑펑 내렸다. 점오가 끝나고 취침에 들어가야 할 시간 모두 단단히 환복하고 눈을 치우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검은 털 달린 귀마개와 운동복을 안에 껴입고 눈을 치우지만 뒤 돌아보면 다시 눈이 쌓여 있었다. 밤 12시 포기하고 내무반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아침 6시 기상과 함께 눈을 치웠던 기억이 난다. 너무 많이 내리는 눈에 일부는 포기하고 1호차가 출근할 수 있도록 출근길 위주로 겨우 눈을 치웠다. 하지만 1호차는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출근을 포기했다는 소식이 들렸고 드디어 내무반으로 돌아왔다. 눈을 치우느라 녹초가 되어 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데 시청에서 제설 협조 전화가 왔다. 정말 군대에서 눈은 하늘에서 내리는 쓰레기였다.


"남자 직원들은 모두 나와 눈을 치우는 것에 협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나의 두 번째 직장에서 눈이 펑펑 내리는 날 겨우 지각하지 않고 출근하여 젖은 구두를 말리고 있었는데 방송이 나온다. 총무과장님이 근무하는 직원들을 모으더니 로비에서 목장갑과 삽과 빗자루를 나눠준다. 출근길이 미끄러우니 눈을 치우라고 한다. 나이가 지긋한 분들은 이게 뭐 하는 짓이냐며 이미 로비에서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셨다. 몇 안 남은 사람들이 눈을 치운다. 아 군대에서 봤던 장면이다. 군화는 그나마 버틸 만 한데 이미 출근길에 젖어버린 구두는 하염없이 물을 빨아들여 신발 속은 수영장이다. 여기저기 치우라고 손가락질하던 총무과장님은 내리는 눈에 사라졌다. 이날도 폭설로 제일 직급이 높은 양반은 출근하지 않으셨다. 나 같은 사람들만 눈길을 헤치고 출근하여 길을 터주는 첨병의 역할을 하는구나.


"내 집 앞에 눈은 스스로 치워 주세요!"

결혼하고 계속 아파트에 살았던 나는 주택에 살면 내 집 앞의 눈을 스스로 치워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파트에 살지 않는다. 눈이 오면 나이가 드신 아버지는 새벽부터 집 앞의 눈을 치우신다. 눈이 오면 퇴근길에 장갑을 끼고 부모님 집에 방문하여 염화칼슘도 길에 뿌리고 눈도 치운다. 재작년에는 아버지의 눈삽을 부러뜨리고 말았다. 습도가 높은 눈은 살살 밀어야 하는데 그냥 힘껏 빨리 밀어버리려고 했던 나의 실수이다. 그 이후 나는 눈삽을 잡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 와중에 눈사람을 만들고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좋은 때라며 웃게 된다. 나도 저렇게 눈이 오는 것을 좋아하는 시절이 있었을까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겨울 : 내려놓을 용기 P. 31

원망을 너무 오래 들고 서 있으면 ‘한恨’이 돼버린다. 그러니 원망이 한으로 변질돼 삶을 비틀고 대물림되기 전에 내려놔야 한다.

《남자의 후반생》(정진홍, 문학동네, 2024.01.31.)


가을에 수확하고 겨울엔 집에서 쉬어야 하는데 겨울에도 눈길을 헤치고 늦지 않게 출근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남자에게 눈은 군대 이전과 군대 이후로 변한다는 말에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눈이 오지 않는 열대에 살고 싶지는 않다. 골디락스처럼 너무 뜨겁지도 않고 너무 차갑지도 않은 적당히 좋은 날씨를 선호하는 적당히 나이 든 아저씨 취향으로 살고 있다.

"보는 눈은 키우고 내리는 눈은 적당한 나의 겨울을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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