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인수인계

세상은 반복

by Jeader

부서 이동으로 후임으로 오신 분에게 인수인계를 해주고 잊고 지내다가 다시 예전 부서에서 인수인계 요청이 왔다.


예전 부서 팀장이 나에게 전화를 하더니 웃으며 말한다.

"무슨 복인지 후임의 후임에게 인수인계 해줘야겠네."

인수인계를 한지 꽤 지났는데 전 부서의 후임의 후임에게 인수인계를 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전 부서의 후임으로 오셨던 분이 승진을 하시고 다른 부서의 팀장으로 발령이 나면서 인수인계를 나한테 받으라며 인수인계 없이 자리를 옮기셨다고 하셨다. 그래서 참 어이가 없었지만 후임의 후임에게 인수인계를 해주는 상황이 생겼다. 그런데 내가 만든 인수인계서도 없어졌다고 하시니 다시 인수인계서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꽤 오래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니 그냥 다시 과거의 자료들을 찾아서 인수인계서를 만들었다. 앗 그러고 보니 팀장이 업무 총괄 아니었나? 그래서 나보다 월급 많이 받는 거 아니었나?


과거 전에 일하던 직장에서 교육이 진행되어서 사전에 교육으로 방문한다고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연락드렸더니 퇴직 전까지 없던 후임이 드디어 발령이 났다고 교육날 오후에 인수인계를 해달라고 요청이 왔다. 그래서 같이 점심을 먹고 과거 4층 부서에서 근무했던 직원에게 만들어두고 갔던 인수인계서 파일철을 꺼내 인수인계를 해주었다. 한참 설명을 해주고 있는데 그 직원이 이렇게 말한다.

"대충 하세요. 어차피 저는 전산직이라 이곳에 오면 안 되는데 우선 땜빵으로 발령이 난 거라 곧 이동할 예정이니 인수인계서만 잘 두고 가세요."

그럴 거면 처음부터 말하던가! 그러다가 그다음 해에 교육을 받으러 갔다가 직원이 정말 발령이 났다는 소문은 들었다. 다행스럽게 인수인계를 해주러 오라는 전화는 오지 않았다.


교육을 마치고 다음 날 출근해서 인수인계도 하고 왔다고 말하니 선배가 그러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 인수인계를 하러 전 직장에 간 나도 무능하게 보일 것이라고 한다. 앞으로 그 후임이 발령 나면 또 인수인계를 해주러 갈 것이냐고 물어보니 할 말이 없었다. 그냥 개인적으로 옛 직장에서 궁금하다고 묻는 경우에 짧게 알려주는 선이 적당하다고 말한다. 하긴 처음 직장에 갔을 때 작은 회사에서 대표가 직접 일을 가르쳐준다고 하면서 이것저것 알려주다가 남들은 알려주지 않아도 다 알아서 배워오는데 넌 왜 그러냐고 화를 내며 알아서 다 하라고 해서 회사를 그만둔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다 알면 여기에서 일 안 하겠죠!"

다행스럽게 3명이 조촐하게 일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람이 많이 근무하는 회사로 이직하였다.


이직한 회사는 다행스럽게 나쁘지 않은 분위기였다. 정년을 하시는 분이 휴가를 가시면서 후임으로 발령을 받아서 인수인계를 직접 받지는 못했지만 3년간 진행되는 파일을 유형별로 꼼꼼하게 편철해서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에 그 문서들을 뒤져보며 업무를 배워서 버틸 수 있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밥을 정말 빨리 먹어서 12시 땡 하고 구내식당에 가서 12시 10분이면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하는 분위기였다. 양치질을 하고도 남는 40분마다 전년도에 진행된 기안문서를 읽으면서 문서에 없는 내용들은 같은 사무실 분들에게 물어보며 버틴 시기였다. 그때 깨달았다.

"잘 정리된 문서철 하나가 열 명의 선임보다 낫다."

잘 정리된 문서만 있어도 다음 사람이 일하는데 지장이 없구나.


그렇게 일하다가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서 인수인계를 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과거 정년을 앞두고 휴가를 가신 분이 남긴 서류를 하나하나 뒤져가면서 찾는 게 질려서 문서를 데이터 별로 엑셀 파일에 정리해 두고 요약본을 파일철마다 맨 앞에 붙여 두었더니 인수인계가 수월했다. 나중에 연락이 와도 파일만 열어보면 된다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내 후임으로 온 분에게 그래도 수월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답변은 심드렁했다.

"제가 사용하는 체계와 달라서 다시 정리해서 사용하고 있어요."

퇴직 휴가를 마치고 퇴직날에 인사하러 와서 서류상의 선임의 실물을 본 나도 있는데 참 배부른 불만이네요. 앞으로 본인이 잘 정리해서 묻지 말고 일하시면 되겠네요!


아무튼 지금의 직장에서 인수인계를 후임의 후임에게 전하고 사무실로 올라오니 팀장이 칭찬을 했다는 이야기를 후임의 후임에게 전달받았다. 하긴 내가 사수라는 사람에게 도움은커녕 잔소리만 듣는 모습을 안쓰럽게 지켜보고 인수인계를 그렇게 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큰 소리를 내던 사람이 그 팀장이었던 것 같다. 나도 사수라는 사람에게 인수인계는커녕 헛소리만 들었다. 가끔 이해가 되지 않는 사수가 과거에 원칙 없이 저지른 일을 묻는 모든 질문에 반복했던 대답이 떠올랐다.

"내가 그걸 어떻게 기억하니! 현재 담당이 알아서 해결해야지!"


내부 인사 이동(회사 내에서 직종 바꾸기) p.171

4) 인터뷰에 합격하고 세 자리로 옮겨가는 과도기에 있을 때, 현재 있는 팀을 잘 도와주라. 인수인계하기 위해 심지어 며칠 동안 당신의 일이 두 배가 되더라도, 유종의 미를 거두어라.

《워크라이프》(몰리 어만, 김지나, 맥스미디어, 2020.09.15.)


나의 사수라는 양반은 끝까지 남의 이야기는 못 들은 척하고 자기 말만 반복하는 고장 난 라디오같이 근무하시다가 희망퇴직으로 본인의 직장생활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셨다. 사람을 개로 바꿔 부르면 멀쩡한 개가 서운할 수 있지만 이 사람은 나에게 개로 많이 불렸다.

"우리 앞으로는 언제 어디서든 다시는 마주치지 않길!"

그러고 보니 그분은 나의 카톡 친구 목록에도 보이지 않는구나.


아무튼 후임의 후임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다시 인수인계를 요청하는 일은 없었다. 시스템이 변경되어서 나도 모르는 시스템으로 변해 버렸다. 그렇구나. 인수인계가 어려우면 시스템을 통으로 변경하면 그만이었다. 앞으로 얼마나 자주 인수인계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의 지론은 하나다.

"피곤하더라도 열심히 알려주면 그만큼 미래에는 쓸데없는 질문이 줄어든다."

나이가 들면 쓸데없는 말을 반복한다고 한다.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쓸데없는 걱정이나 비난은 멈추고 도움 되는 긍정적인 말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모니터의 인수인계서 파일을 보며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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