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손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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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der

"가는 길에 코너에 있는 채소가게에서 내려줘."


어머니와 은행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근처 채소가게에서 내려달라고 하신다. 무얼 사시려고 하냐고 물었더니 설날을 대비해서 동치미도 담고 이런저런 것들을 준비할 거라 하신다. 어머니는 팔순까지 팔팔하시다가 최근 거동이 불편해지셨다. 과거에는 참 많이 돌아다니시고 활발하셨는데 하필 지하철 파업하는 시점에 지하철을 타셨다가 오랜만에 온 열차를 타려는 인파에 밀려 넘어져 병원 신세를 지고 퇴원하셨지만 점점 걷기 힘들어하셨다.

"엄마, 차라리 무거운 것 살 거 있으시면 오늘은 내가 옮겨드리면 되니 마트에 가요!"


어머니는 예전에는 시장을 돌아다니는 재미로 매주 장을 보셨는데 이제 지팡이 없이 걷기가 힘드시다. 마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어머니는 오늘은 지팡이가 없으셔서 내 손을 꼭 잡고 다니신다. 카트를 사용할까 물어보니 그렇게 많이 살 것은 없다고 하셔서 바구니를 하나 들고 마트에 입장했다. 무를 3개 담고 배추도 한 포기 담고 파프리카까지 선택하니 플라스틱 바구니가 꽉 찬다. 그래도 나온 김에 한우 국거리도 사고, 파도 한단을 사고 잡채를 만드신다고 시금치도 두 단 사고, 당근도 한 봉지 샀다. 바구니 중심을 잡기 쉽지 않을 정도로 수북하게 물건을 구입했다. 그래서 한 손에는 어머니 손을 꼭 잡고 한 손에는 바구니를 들고 장을 본다. 나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오늘따라 무거운 바구니를 들고 있는 손이 저려온다.

"엄마, 우리 잡은 손을 바꾸자!"

"바구니가 무겁구나."

"엉, 손을 바꾸면 바구니 들기 수월할 것 같아."


손을 바꿔 왼손으로 바구니를 다시 들고 계산대로 향하는 곳을 마지막으로 구경을 했다. 어머니는 앞에 선물세트를 산 아저씨에게 무엇을 샀는지도 물어보시고 비싼지도 물어보신다. 앞에 아저씨는 수줍게 웃으시면서 비싸지 않다고 답해주신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대형마트에 오셨다고 상품들이 많이 변했다며 여기저기 구경하셨다. 70대까지 어머니도 매달 친구들과 돈을 모아서 이곳저곳 소풍을 다니는 것이 낙이었는데 거동이 불편하시고는 영 돌아다니는 것이 겁이 난다고 하신다. 동작도 느려지고 다리에 힘도 빠지신다고 아쉬워하신다. 아무래도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움직임이 느려지고 힘들어지면서 외출이 즐겁지 않으신 것 같다. 마트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머니는 딱 70살 차이 나는 손녀가 고등학교 졸업하는 모습은 볼 수 있으려나 자꾸 말을 흐리신다.

"손녀 졸업하는 모습도 보셔야 하니 이제라도 몸과 마음 편하게 사세요!"



구운 김 p.222

친구의 어머니는 ‘도시락 아줌마’였다. 내 친구가 초등 3학년일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4남매를 키우던 친구 어머니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김밥을 싸고 수십 개의 양은 도시락에 담아 을지로의 회사 사무실로 배달을 다녔다. 오후에는 빈 도시락을 다시 수거하러 건물의 계단을 오르내렸다. 회사원들이 시키는 배달 음식은 중국집의 짜장면 아니면 도시락 아줌마들이 양팔이 떨어지도록, 무릎이 후들거리도록 이고 지고 층마다 오르내리며 갖다 주던 김밥이었다. 양은 도시락 하나가 500그램이라고 치면 4남매를 혼자 키우던 내 친구의 어머니는 매일 30킬로그램이 넘는 무거운 도시락을 머리에 이고 양팔로 들어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의 계단을 오르내린 것이다.

《금호동의 달》(김정식, 이유출판, 2024.07.16.)



어머니와 차를 타고 오는 길에 과거의 일들을 이야기한다. 지나고 나면 꼭 후회가 남는다고 하신다. 살면서 결과를 알고 나면 과거의 선택들이 잘못된 것을 알게 된다고 하신다. 꼭 지나고 나면 후회한다고 어머니보다 젊은 나는 앞으로 현명하게 선택하고 후회 없이 잘 살길 바란다고 하신다. 어머니에게 영화도 결론을 알고 나면 재미가 없는 것처럼 인생도 지나고 나서야 선택이 올바른지 잘못된 것인지도 알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도 아직도 매일을 돌아보면 사실 후회하는 일이 많다고 대답한다. 인생에 정답이 어디에 있겠는가 싶지만 그래도 어머니께 매일 최선을 다해 마음 편하게 살라고 나도 실행 못하는 삶의 태도를 추천해 드린다. 어머니는 아직도 나를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걱정을 멈추지 못하신데 이제는 나도 나이가 들어가니 늙어가시는 부모님이 걱정된다.

"엄마, 그러고 보니 엄마랑 같이 장을 본 게 30년 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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