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선을 피했다

by Jeader

기획의 말을 대신하여 p.7

아름다운 노래가 재난을 당한 이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고 그것은 예술의 힘이다. 때로는 찢어지는 비명이 다가오는 재난을 경고할 수 있고 그것 역시 예술의 힘이다. 위로의 노래가 필요한 순간이 있고 사이렌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지금 새로운 재난이 오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게 뭔지, 거기에 어떤 이름이 붙을지는 잘 모르겠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 몇몇 천재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부동산에 매겨지는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하는데 성실한 노동의 가치는 추락한다. 플랫폼과 인공지능이 노동시장을 흔든다. 일에서 의미나 보람을 찾는다는 사람은 드물다. 이런 현상들을 ‘자본가 대 노동계급’이라는 과거의 틀로 파악하고 대처할 수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김의경 외, 문학동네, 2023.09.01.)


살다 보면 다양한 일들을 마주하게 된다.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이들의 인건비가 인상되자 회사는 아이들의 근무시간을 줄여서 비용의 증가를 억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6시간 아르바이트를 하던 자리는 조금씩 근무시간이 줄어들다고 작년에는 하루 근무시간이 2시간 30분으로 변했고 올해는 아예 그 아르바이트 자리는 없어졌다. 그렇다고 일이 줄어들진 않았다. 결국 누군가 그 일을 나눠서 하였고, 그렇다고 그 누군가의 급여가 일이 늘어나는 만큼 오르지도 않았다. 그저 아직 밥벌이가 남아 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으로 남았다.


아르바이트 일자리가 변화하듯이 나의 일자리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코로나로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변화하였고, 정책은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명목과 다르게 역으로 활용되는 것이 당연하고 스마트한 선택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좋은 직장이라고 소문났던 일자리들이 옛 영광을 뒤로하고 사양산업이 되었고, 그나마 안정적이라는 일자리들은 명예퇴직이 직장생활 중에 가장 다행인 이벤트가 되어버렸다. AI 시대에는 개인들은 과거의 성실함 이외에도 경험을 통한 자신만의 서사를 갖추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경고는 성실하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다는 격언을 호랑이 담배 피우던 과거의 이야기로 만들어버렸다.


일이 여유롭고 안정적이며 돈도 많이 주는 자리는 기업의 오너들이 자리한 직책을 제외하면 세상에 없는 것 같다. 오늘도 돈이 없다면서도 돈 벌어오라고 닦달하면서 정작 본인은 돈을 아끼고 적절히 분배하지도 못하고 자기 과시를 위해 본업과 상관없는 일들을 벌리는데 가장 진심으로 보이는 회사의 장은 정말 걱정이 걱정을 해 걱정이 없으면 걱정이 없겠다는 네팔 속담 같아 한편으로는 부럽다. 인생은 멀리서 보며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자신이 서있는 위치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다."는 드라마 <송곳>의 대사가 떠오른다. 화려하거나 빛나는 것보다는 그림자처럼 눈에 띄지 않는 나의 밥벌이 현장에서 스스로를 모르게 못 본 척하는 소심한 나를 자각하면 나도 모르게 내가 더 작아지는 느낌이다. 삶은 현미경을 들이대면 잔혹한 비극으로 보이고, 망원경으로 바라보면 아름다운 풍경으로 보인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고민이 고민을 만드는 월요일이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살아가기로 했다. 현미경과 망원경을 두루 보며 힘내서 광활한 나만의 광야를 개척하러 나아간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