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효도의 종말, 나이 듦의 미래
민폐와 염치의 밸런스 p.233
"다리가 아프면 택시를 타세요. 택시비 드릴게요."
"나는 괜찮다. 그런데 침을 맞아도 통 다리가 낫지 않네. 그래도 내 걱정은 하지 마라."
부모들은 어느새 수동공격의 달인이 됩니다. 간접적인 화법으로 불편함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죄책감을 덜고 싶은 자식과 그 죄책감에 기대서라도 자식과 끈끈하게 이어지고 싶은 부모의 모습입니다.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송길영, 교보문고, 2023.09.25.)
생각해 보면 예전에도 부모님의 삶의 방식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고, 왜 저렇게 사는 것인가 자주 충돌하기도 했다. 모든 청춘들과 비슷하게 집 곳곳에 나의 분노의 발길질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꼬장꼬장하셨던 부모님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약한 모습을 자주 보여주신다. 몸도 맘대로 움직이지 않고 근력도 많이 떨어져 쉽게 피곤해하신다. 하지만 성질은 여전하셔서 화는 버럭버럭 내시는데 예전과 같이 나를 할 말 없게 만들던 말들은 사라진 느낌이다.
팔순이 넘어지면서 어머니는 자주 넘어지시고 자주 병원에 가셨다. 예전과 같이 성격은 급하시나 몸이 그때처럼 재빠르게 움직이지 못하셔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예전에 어린이날에 부모님과 함께 걸어가면 저 앞에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서 숨을 헐떡이며 쫓아간 기억이 있다. 그리고 결국은 어머니 아버지는 어린이날에 싸우시고 각각 집으로 돌아오셨다. 두 분 다 자신의 의견을 활발히 표출하시는 성향이라 어느 분 하나 포용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어린이날에 대한 기대감은 사라졌고 부모님들이 서로의 신념과 생활태도에 대한 원망을 들어주며 집까지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이분들은 격동의 시기를 살아오셔서 마음이 급하시다. 그리고 전쟁도 겪으시며 배고픈 어린 시절을 버텨내고 생존하신 분들이라 주장도 강하시다. 그리고 이 세대의 특징답게 묵묵히 견디고 버티는 것에는 강하나 표현에 약하시다. 그래서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숨 막히는 때도 있다. 정확하게 무슨 생각을 말하고 싶은가 의문도 든다. 그리고 부모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나를 볼 때마다 이렇게 표현하지 않고 살면 아이에게 또 외면받을 수 있겠다는 위기감도 든다.
부모님과의 관계는 가족이라는 관계에서는 누가 옳고 그른 문제는 아니다. 그저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지만 표현하지 못하고 그런 것에서 오는 오해로 서로를 원망하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수동공격의 달인이 되고 자식들은 그것에 대한 불편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새로운 가족 관계의 형태로 나타난 것은 아닌가 싶다. 그냥 이건 싫고 이건 좋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부모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고 믿는다. 이것이 관심을 애정을 받고 싶어 하는 반어법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어머니, 아버지. 가족관계에서는 서로를 인정해 주고 서로의 감사함을 조금 더 표현하고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덕분에 오늘까지 잘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서로의 평가보다는 감사를 습관화하고 만나면, 웃음이 넘쳐나고 더욱 끈끈한 사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제는 서로를 가장 잘 알고 서로를 위하는 친구처럼 지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