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후 190 인간 - 3

전제조

세후 190 인간은 그래도 생각보다 괜찮다. 몇 가지의 전제조건이 붙긴 하지만.

첫째. 캥거루족이어야 한다. 이 숨만 쉬어도 돈을 앗아가는 서울 집값에는 부모님과 함께 살아야 한다.

둘째. 사치는 금물. FLEX란 단어는 잊고 사는 게 좋다.

셋째. 결혼도 금물. 그 누구뿐 아니라 반려동물조차 먹여 살리기 힘들다. 

넷째. 평탄한 건강. 누군가가 아프면 조금 위험할 수 있다.

적고 보니 세후 190 인간의 삶은 너무나 빡빡한 것 같다. 현재 네 번째 전제조건이 약간 무너지려고 한다. 그래도 내 곁을 지켜주는 여자친구가 아프다. (그래도 세후 190 인간에게 연애는 허락된다고 생각한다.) 오늘 대학 병원을 가서 진료를 받았는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한다. 어느새 내가 보호자가 된 거 같아서 부담되지만,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병원비 걱정부터 하는 내 모습이 조금 한심할 뿐이다. 건강은 최고이거늘. 건강은 유리공이거늘.

그래도 수술을 해서 다시 전제조건을 채운다면. 그래도 살만하지 않겠는가. 수술이 잘되고 건강해지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렇기에 살만하고 행복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