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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호너구리 Nov 14. 2023

세후 190 인간 - 5

단역

입사를 한지 한 달이 되어간다. 그중에 나와 같이 면접을 봐서 2주일 먼저 온 친구는  흔히 말하는 일신상의 사유로 자리를 떠났다. 한 달 반을 채우고 간 그 친구의 자리는 이제 비었다, 이상하리만치 별다른 건 없었다. 그 친구가 했던 일은 위로 아래로 갈가리 찢겨나가서 다시 자리를 잡았다. 이 자리에 누가 있었던 흔적조차 없이. 내가 지금 이 자리를 떠난다고 해도, 똑같을 것이다.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 게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어떠한 일을 해도 누군가가 나가면 그 자리는 없었던 것처럼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슬픈 일이다.  조연정도 되는 것 아닐까. 아니면 단역. 주인공이 무대에 빠지면 모두 혼비백산하고 놀라겠지만, 단역이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었다고 해도 그 누구도 못 알아챈다. 알아챈다고 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결국 나간 그 친구도 단역이었을까. 아니면 우리 모두 결국 단역인 것인가.



 다시 공고가 올라갔다. 취업난이 심하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많은 사람들이 지원하였다. 주연을 뽑는 오디션이 아니다. 누가 와도 별 이상 없는. 특별함이 필요 없는. 엑스트라 모집 공고다. 주연 오디션 공고는 드라마 홈페이지나, 혹은 제작사에서 할지 모르지만,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엑스트라 모집 공고는 알바몬, 알바천국에 올라온다. 



아마 5월쯤에는 새로운 사람이 저 빈자리를 채울 것이다. 누군지도 모르는. 누가와도 이상하지 않을. 저 자리에 말이다. 세후 190 인간을 살아갈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 오면 조금 오래 있을 수 있을까. 궁금증이 든다. 그러다가도 다시 생각을 멈춘다. 월요일에는 생각을 하면 건강에 해롭다. 그저 무념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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