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2. 파고다의 도시 바간 / 아름다운 호수 인레
미얀마 여행 3일차, 숙소 Roof Top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바간 일일투어를 위해 차량이 기다리고 있는 1층으로 나갔다. 같이 투어를 하기로 했던 프랑스 여성은 투어를 취소했고, 나보다 1살 어린 43살의 한국 남자 여행객 A와 하루를 같이 보내게 되었다. 바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마차투어를 즐기지만 날씨가 너무 덥고 건강이 별로 좋지 않아서 차량을 이용한 투어를 신청했다. A와 나는 바간투어 내내 마차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흙먼지를 뒤집어 쓰는 사람들을 창문너머로 쳐다봤다. 의자 쿠션이 엉망인 승합차였지만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에서 A와 나는 탁월한 선택에 상대적 만족감을 느끼며 투어를 즐겼다.
A는 대기업의 IT관련 부서에 근무하다가 프리랜서로 전향하여 가끔 여행을 즐긴다고 했다. 좀 까칠한 면이 있었지만, 하루 종일 둘만의 투어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를 하고 간식을 챙기다 보니 친해지게 되었다. 일일투어가 끝나갈 무렵 A는 한 살 많은 나에게 "형님" 호칭을 붙이며 같이 저녁식사를 하자고 했다. 저녁식사 자리에는 우리 외에도 A와 미얀마여행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다는 30대 중반의 여성 변호사 B와 같은 숙소에서 만난 연세대 여학생 그리고 50대 부부가 동행했다.
저녁식사와 함께 맥주를 마시며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로펌소속의 변호사였다는 30대 중반의 여성 B는 회사에 사표를 내고 여러나라를 여행중이라고 했다. 캄보디아와 라오스를 거쳐 미얀마에 왔고 유럽과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싶다고 했다. 나와 한 숙소에 묵고 있는 여대생 C는 아침식사 중 Roof Top에서 나에게 인사를 했는데 찬바람이 불어서 무색했다고 한다. 쑥스러운 미소와 함께 40대 중반의 아저씨가 예쁘고 너무 어린 아가씨가 갑자기 말을 걸어 당황했었던 것 같다며 사과를 했다.(사실은 이른 아침 조용한 아침식사를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50대 부부까지 여섯명의 여행자는 그날 저녁 늦게까지 여행이야기와 각자의 이야기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미얀마여행에서 인상 깊은 많은 장면들이 기억에 남지만 가장 의미있는 시간은 바로 이날 저녁이었는지 모른다. 20대 이후 처음으로 혼자만의 여행길이었다. 출발전 이런 생각을 해봤다. 90년대 배낭 하나 달랑메고 북미와 유럽을 여행했을때 길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여행은 전혀 외롭지 않았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40대 중반 아저씨의 여행은 '행여 외롭지 않을지?', '그때만큼 친구가 생길런지?' 이런 걱정속에서 여행을 시작했다. 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막연한 걱정은 세상 쓸데없다. 이날의 경험을 통해 나는 20살 시절보다 지금의 내가 어쩌면 더 큰 스팩트럼을 가지고 친구를 사귀고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진심으로 안심되고 기쁜 일이 아닐수 없다.
저녁식사를 통해 같이 일일투어를 했던 A, 여성 변호사인 B와 나는 이야기가 잘 통해서 남은 바간여행을 같이 했고 다음 여행지인 인레호수와 까꾸여행도 함께 하게된다. 어쩨든, 많은 친구들을 만나게 해준 바간은 많은 파고다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지만, 지평선이 보이는 넓은 평원에 파고다들이 위치해 있어, 일출과 일몰이 아름답고 신비롭기로도 유명한 곳이다. 일출과 더불어 하늘을 수 놓은 색색의 열기구가 주변의 풍광과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모습은 판타지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바간을 뒤로하고 미얀마 국내선 비행기로 인레호수로 향한다. 비행장에서 인레호수의 입구마을인 냥쉐까지는 차로 30~40분정도 걸린다. 택시를 타려고 했으나 의도치않게 픽업트럭의 뒷자리에 4명의 유럽친구들과 함께 타게 되었다. 냥쉐까지의 길은 갓길에 낡은 집들과 상점들이 즐비하고 도로에는 이따금 소떼들이 차량의 진행을 방해하곤 했다. 바람과 함께 밀려든 흙먼지 때문에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픽업트럭 뒷자리에서 바라보는 이국적 정취에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날리기 바빴다. 아마도 60년대 우리나라 지방도로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최소한 71년에 태어난 내 기억속에도 없는 모습이라면 60년대의 모습이리라 생각했다.
냥쉐에 도착하여 내가 예약한 숙소에 내릴즈음 픽업트럭에서는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유럽의 젊은 친구들, 정확히 독일의 젊은 친구들은 픽업트럭을 4명이서 20불에 타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갑자기 더 타게 되었으니 1인당 4불씩 내야된다는 것이고 픽업트럭기사는 1인당 5불씩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일 먼저 내려야하는 나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양쪽의 기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결국, 나는 4불을 내고 내렸고, 기사는 투덜거리며 출발했다. 덕분에 1불을 아껴서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1불의 절약보다는 1불을 놓고 벌어지는 양쪽의 기싸움을 바라보는 재미가 더 있었다고 할까... 차가 떠나고 손을 흔드는 뒷자리 유럽 친구들에게 미소를 보내며 예약된 호텔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