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1. 혼자 떠나는 여행 / 파고다의 도시 바간
2014년 초겨울, 전날 마신 술의 숙취를 안고 회의 중이었다. 얼마 전 건강검진을 받은 병원에서 온 전화. 건강검진 결과, 갑상선에서 암이 발견되었다는 전화였다. 종합병원에서 재진단을 받았고 암덩이가 꽤 커져있는 상황이어서 2월 초로 수술 날짜를 잡았다. 갑상선암이 생명에 위협이 되는 큰 암은 아니지만 지난해 시작된 공황장애가 완치되기도 전에 찾아온 암 진단에 내 기분은 급격하게 다운될 수밖에 없었다. 12월 초 어느 주말 내 수술을 담당한 의사가 쓴 갑상선암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보던 아내는
"그 책 보지마!!! 차라리 여행을 다녀와."
"여행?"
"그래, 여기 있어봐야 매일 우울할거고 여행 준비하고 다녀오면 그동안은 병 걱정 잊을 수 있을 테니까... 아이들이 아직 방학이 아니니까 혼자 다녀와..."
"(아주 밝게 웃으며...) 그럴까?"
"으이그... 아프다는 거 잊지 말고, 약 잘 가져가고 조심해서 다녀와야 돼."
그렇게 미얀마 여행이 시작되었다. 20대 이후 20여 년 만에 혼자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때와 다른 점은 내 몸안에 20kg의 불어난 살덩이와 조그만 암덩이가 있고 배낭에는 공황장애 약과 혈압약이 추가되었다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혼자 떠나는 여행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이 여전히 배낭 속에 함께한다는 것이다. 여행이 결정되자마자 바로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서점에 가서 미얀마에 대한 책 몇 권과 여행 가이드북을 샀다. 아내의 말대로 암에 대한 책 대신, 미얀마의 파고다가 가득한 책을 집어들자 내 우울함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지고 내 몸은 여행에 대한 준비와 기대로 가득 찬 상태가 되었다.
쾌속으로 준비한 여행은 12월 19일 미얀마 양곤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르면서 시작된다. 미얀마 여행 일정은 파고다의 도시 바간, 아름다운 호수 인레 그리고 한 장의 사진에 이끌려 찾아간 까꾸로 구성되었다.
금요일 저녁 퇴근을 하자마자 미리 준비해 둔 배낭을 메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저녁 비행기를 타고 이미 어둠이 내려앉은 양곤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12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다음날 아침 6시 바간행 비행기를 예약해 뒀기 때문에 공항 근처의 값싼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너무 값싼 숙소를 잡았는지 시설이 엉망이었다. 겨우 샤워를 하고 누웠지만, 모기와 사투를 벌이느라 자는 둥 마는 둥 시간을 보내고 택시를 불러 다시 공항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 공항은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크리스마스 휴가시즌이어서 인지 서양 관광객들이 많았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겨우 정신을 챙기고 많은 사람들에 이끌려 목적지인 바간으로 향한다.
미얀마는 불교의 나라다. 미얀마를 여행하면 이 나라를 만나는 모든 순간이 종교와, 불교와 연관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거리마다 마주하게 되는 많은 사원들, 흔하게 마주치는 길거리의 승려들, 사람들이 사는 집의 숫자만큼은 되어 보이는 파고다(탑)와 부처상이 이 나라의 정체성을 증거한다. 이런 미얀마의 도시들 가운데 가장 사원과 파고다가 많은 지역이 여기 바간이다. 바간은 미얀마의 고대국가로 동남아 역사에 있어서 큰 영향력을 미쳤고, 불교문화의 최대 부흥을 이끌어 냈다고 한다. 특히, 바간지역에는 현재까지 남아있는 파고다가 3천개이상 남아있어 만달레이와 더불어 미얀마의 최대의 관광도시로 유명세를 떨치는 곳이다.
바간 공항에 도착했을 때, 예약한 숙소에서 픽업 서비스가 나와있었다. 'WELCOME Mr LEE'라고 적힌 A4용지를 들고 있는 40대 남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타지에 도착했을 때,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조금 낯설면서도 싫지 않았다. 물론, 밝고 아름다운 이성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미얀마 치마 롱지를 두른 시커먼 아저씨였지만 말이다. 이 친구는 예약한 호텔 여주인의 남동생이었고 나보다 2살이 어린 친구였다. 붙임성 좋은 이 친구는 몇 가지 일상적인 질문에 이어, 아침식사를 하지 않았다면 가는 도중에 함께 아침식사를 하자고 말한다. 만난지 20분 된 외국인이 권하는 아침식사. 뭔지 모를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아침식사를 거른 허기짐과 호기심에 흔쾌히 동의했다.
우리가 도착한 식당은 쌀국수와 요우티아오*(油条, 기름에 튀긴 긴 빵)를 파는 곳이었다. 큰 길가에 위치한 천막식 가설 식당으로 주로 현지인들이 식사하는 곳이었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같이 간 친구와 식당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봐서 모두 동네 친구들 같다. 식당은 바간 시내 중앙로변에 위치해 있고 흙바닥에 텐트를 치고 간이의자와 오래된 나무 식탁이 고작이었지만 음식과 식기들은 불결해 보이지는 않았다. 자리에 앉아서 뜨거운 물로 찻 잔을 헹궈내고 따뜻한 차가 건네졌다. 우리는 쌀국수와 커피, 요우티아오를 먹었다. 쌀국수는 담백하고 양이 적당해서 아침식사로 부담스럽지 않았다. 달콤한 커피와 함께한 요우티아오도 맛이 좋았다. 갑작스러웠지만 만족스러운 아침식사로 바간 여행의 기대감이 한 층 올라갔다.
* 우리나라 꽈배기와 비슷한 빵으로 중국과 동남아에서 많이 먹는다. 중국어 명칭만 알고 있어서 요우티아오라고 기입한다. 개인적으로 중국인들은 또우지앙(豆浆)이라는 콩물과 요우티아오를 함께 먹지만 나는 달콤한 커피와 같이 먹는 것이 훨씬 좋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숙소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했다. 숙소는 루프탑에 식당이 있는 3층 건물의 작은 지역 호텔이다. 숙소의 주인은 아침식사를 같이 한 친구의 누나인데 말과 행동에서 지성미를 느낄 수 있는 이지적인 사람이었다. 나이는 나와 동갑내기이고 정치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두 남매가 모두 호감가는 사람들이어서 바간 숙소 선택에 운이 좋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숙소 체크인을 마치고 바간 근처를 둘러보기 위해 자전거를 한 대 빌렸다.
바간의 파고다는 꽤 넓은 지역에 산재해 있다. 바간의 파고다를 보기 위해서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일단, 더위 때문에 도보로는 불가능하다.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이용할 수도 있고, 마차나 자동차를 빌려서 둘러볼 수도 있다. 나는 첫날 자전거를 빌려서 반나절 정도 혼자 둘러보고 둘째 날은 자동차 투어를 다른 여행자와 쉐어하기로 했다. 가격이나 사진 찍을 것을 생각하면 마차를 타고 싶었지만, 무더운 날씨에 이동 중이라도 에어컨을 이용할 수 있는 차를 이용하는 것이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자동차 투어의 쉐어를 호텔에 부탁하고 자전거를 빌려서 파고다 지역으로 나갔다. 너무 더웠다. 12월임에도 미얀마는 너무 더웠다. 특별한 목적지 없이 그늘이 많은 곳을 찾아 자전거를 몰았다. 가는 곳마다 이름 모를 파고다들이 있었다. 조금 큰 파고다에는 불상들이 있었고, 작은 파고다들은 군집을 형성해 있었다. 파고다의 규모는 아마도 건설자의 권력의 크기를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소규모 파고다가 훨씬 많았고 수 천에 이르는 파고다의 개수를 봐서는 바간의 불교가 당시 대중적이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지도와 가이드북에 파고다의 이름이나 여러 가지 역사적 이야기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오늘은 자전거를 타며 바간을 그저 둘러보기로 한지라, 그저 풍광을 바라보며 자전거의 페달을 밟았다.
파고다 지역과 시장, 식당가들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고 숙소로 돌아왔다. 조금 무리해서 인지 몸 상태에 문제가 생겼다. 어제 모기 때문에 거의 자지 못하고 오늘 자전거를 타고 반나절을 더위에 노출되어 있었더니 컨디션이 좋지 않았나 보다. 공황 증세가 보인다. 가까운 식당에서 간단히 저녁식사를 하고 호텔 프론트에서 내일 자동차 투어를 체크했다. 일단, 나를 포함해서 두 명이라고 한다. 숙소 주인 말로는 젊은 프랑스 여성과 투어를 쉐어해야한다고 한다. 이번 여행은 뭔가 잘 풀리려나... 그나저나 갑자기 찾아온 공황 증세로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방으로 돌아와 공황장애 약을 먹고 일찍 잠들었다. 그렇게 자고 있는데 누군가 노크를 한다. 숙소의 주인이다. 내일 여행을 쉐어할 사람이 잠깐 프론트에서 봤으면 한단다.
" France woman?"
"ㅎㅎㅎ No, Korean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