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2 아름다운 윈난(옥룡설산, 람월곡, 인상여강)
한여름의 설경 옥룡설산(玉龙雪山), 람월곡(蓝月谷)
옥룡설산은 윈난성 서북부에 위치한 해발 5500여m의 히말라야 산맥자락 고산(高山)이다. 4000고지가 지나면서부터 한여름에도 만년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옥룡설산 4500고지까지는 케이블카가 운영되고 있어 나처럼 등산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도 만년설이 쌓인 설산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중국여행을 간 시기가 8월의 삼복이었지만, 1900고지의 쿤밍에서는 초여름 날씨를, 2200고지의 리장에서는 봄 날씨를, 그리고 옥룡설산에서는 눈이 보이는 겨울의 날씨를 경험할 수 있었다. 옥룡설산은 몇 일내에 사계절의 날씨를 경험할 수 있는 흔치않은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다.
리장에서 옥룡설산까지는 버스로 1시간 30분정도여서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충분하지만, 일정이 넉넉하지 않아서 옥룡설산과 람월곡, 인상여강공연을 모두 볼 수 있는 일일투어를 이용하기로 했다. 리장 고성 내의 여행사를 돌며 일일투어를 알아보니 저렴한 것은 중국인 단체관광객들과 함께 대형버스를 이용하는 상품과 조금 비싸지만 미니버스로 한 두팀이 같이 움직이는 상품이 있었다.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단체관광의 소란스러움을 피해 숙소에서 추천하는 미니버스 상품을 예약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이른 아침 우리는 옥룡설산으로 가기위해 미니버스에 탔다. 버스 안에는 중학생딸과 40대 엄마로 보이는 중국인 모녀가 우리보다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10대의 딸이 영어를 꽤 잘하는 편이어서 간단한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아이가 영어도 잘하지만 외국인에게 차분하고 어른스럽게 대응하는 모습이 보기좋고 기특했다.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에 아이의 엄마에게...
"您的女儿说英语说得真好,还有很聪明。“
(따님이 영어를 정말 잘 하네요, 그리고 정말 똑똑하네요)
아이의 칭찬을 들은 엄마는 함박웃음을 짓는다. 부모가 아이 칭찬에 그저 흐뭇해 지는 것은 만국공통인가 보다. 많은 말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좋은 인상으로 시작해서인지 일일투어 내내 눈웃음을 주고 받게된다.
봄비처럼 부슬거리는 빗자락 속에서 우비를 챙겨입은 우리 가족은 1시간여를 기다려 옥룡설산으로 올라는가는 케이블카를 탈 수 있었다. 투어에서 제공하는 에프킬라통같은 휴대용 산소호흡기를 들고 옥룡설산 정상으로 향한다. 케이블카 승하차장에서 정상까지는 약 1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야 한다. 4000고지가 넘기 때문에 호흡곤란이나 고산병이 생길까봐 걱정했지만 가족 모두에게 특별한 증상은 없었고, 산소호흡기도 호기심으로 몇 번 사용해 봤을 뿐이었다. 사실 옥룡설산 정상의 모습이 아주 아름답거나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만년설을 실제 볼 수 있었고, 4000m 이상의 고지에 올라가 봤다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정도. 오히려 인상여강공연이나 람월곡 등 산 아래에서 바라보는 옥룡설산의 모습이 아름답고 신비로워 보였다. 자연이나 사람의 경우도 옥룡설산 같은 경우가 많다. 안에 들어가서 느껴지는 자연이나 사람보다 거리를 두고 떨어져 밖에서 느끼고 보는 모습이 훨씬 경이롭고 존경스러울 때가 많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많지만...
옥룡설산에서 내려와 점심식사를 하고 우리는 '붉은 수수밭'과 '5일의 마중'으로 유명한 장예모감독의 인상여강공연(印象丽江)을 관람했다.
인상여강공연은 나시족과 차마고도에 대한 이야기이다. 차마고도는 중국의 윈난성에 모인 찻잎을 히말라야의 험준한 산길을 따라 네팔과 인도로 보내는 고대의 교역로였다. '차마고도'라는 방송 다큐멘타리를 통해서도 소개된 이 고대의 교역로는 험준한 산과 강의 지세가 만들어낸 아찔한 벼랑길로 유명한 길이다. 이 차마고도를 통해 차교역을 담당했던 민족이 이 지역 소수민족인 나시족이라고 한다. 찻잎이 모이는 리장고성이 나시족의 성이란 것을 보더라도 이 교역의 중심에 나시족이 있었으리라 쉽게 예상해 볼 수 있다. 더불어, 리장고성에 왜 그리도 찻잎을 파는 상점들이 많았는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인상여강공연은 나시족 주민 500여명이 출연하는 야외공연으로 옥룡설산을 배경삼아 첩첩산중 차마고도를 형상화한 대규모 무대를 설치하고 차마고도와 함께하는 나시족의 삶과 애환을 노래와 춤으로 표현하는 공연이다. 우리가 공연을 볼 때쯤 내리던 비가 멈춰서 옥룡설산은 마치 백룡에 감싸인듯 한 모습이었고 백룡에 둘러쌓인 설산아래 인간이 만든 차마고도와 수백의 인간이 설산을 경외하는 춤과 노래를 바치는 축제의 장이었다.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도 절경이었지만, 이 날은 자연과 어울어진 나시족의 춤과 노래가 가장 인상적인 날이었다.
3kg이 빠진 아내 - 윈난의 중국음식
열흘의 여행동안 아내는 무려 3kg이 빠졌다. 다이어트를 위해 그렇게 노력을 해도 3kg 감량은 쉽지 않은데 여행와서 열흘만에 3kg이 빠지다니 꿩먹고 알먹고가 아니냐고 놀리기는 했지만, 아내는 입에 맞지않아 중국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다. 중국음식 특유의 향도 문제였지만 음식들이 너무 짜서 거의 먹지를 못했다. 북경여행에서는 음식이 입에 잘 맞아 먹는데 문제가 없었는데 윈난의 음식들은 북경의 음식보다 향과 짠맛이 훨씬 강해서 먹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샹차이같은 향신료를 잘 먹는 나도 과도한 짠맛에는 먹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아내는 햄버거와 빵종류가 보일때마다 사먹는 것으로 끼니를 대신했고 열흘만에 본의아닌 다이어트를 하게 되었다. 도시에서 시골로 가면 갈수록 향신료 맛과 짠맛이 더해지는 것으로 봐서 중국의 맛도 건강과 서구화 바람을 타면서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옥룡설산 여행을 마치고 리장에서 다시 야간열차로 쿤밍으로 돌아온 우리 가족은 쿤밍인근의 석림(石林)여행을 끝으로 귀국했다.
중국 장기여행을 꿈꾸며...
중국과 우리나라와는 수 천년동안 밀접한 공존관계에 놓여있는 것이 숨길수 없는 사실이다. 고래로 우리와 중국은 협력자이며 경쟁자로 지내왔고, 현재도 정치, 경제, 사상, 문화, 역사 등 모든 면에서 경쟁자이며 서로 공존할 수 밖에 없는 관계에 놓여있다. 이 모든 관계들을 떠나서 중국은 우리와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더불어, 중국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우리가 아는 중국의 색깔은 북경과 상해를 중심으로 하는 동북중국의 색깔이 대부분이다. 윈난, 쓰촨, 산시, 광시, 신장, 티벳 등 우리가 잘 모르는 중국의 모습을 무척이나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우리와 가장 가깝고 비슷한 나라지만 우리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은 나라가 중국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중국에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중국의 과거 흔적과 현재의 모습을 보고 싶다. 중국어를 배우는 것도 중국여행을 하며 중국의 문화와 음식, 사람들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알았으면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코로나가 끝나고 다시 중국의 도시들을 여행할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중국어를 공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