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군 오산항~후포항
동해바다 도보여행길인 해파랑길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직장 때문에 한 달에 2~3일씩 나눠서 여행하고 있습니다. '해파랑 일기'라는 제목으로 도보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해파랑길 25코스(울진군 오산항) ~ 24코스 (울진군 후포항)
6월 4일 맑음(오산항, 망양휴게소, 사동항, 후포)
이른 아침 부지런한 자전거 여행자들의 부스럭거림에 잠에서 깨어 출발준비를 서두른다. 숙소인 오산항 인근 게스트 하우스 '하품'을 출발해 망양휴게소로 향한다. 여름이 시작되어 한 낮은 따가운 땡볕에 숨이 막히지만 아침공기는 여전히 선선하다. 기분 좋은 아침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망양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는다.
아름다운 길 망양휴게소 ~황금울진 대게공원
마을길을 따라 망양휴게소에 도착한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노출된 오래된 휴게소이다. 휴게소 앞으로는 새로운 4차선 국도가 시원스레 뻗어있고 바닷가가 보이는 아래쪽으로는 오래된 구(舊) 국도가 위치해 있다. 차를 타고 새로 만들어진 4차선 국도를 지나간다면 그냥 지나쳤을만한 휴게소의 외관이다.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었지만, 이른 아침인지라 그나마 남아있는 가게들도 영업을 하지 않는다. 커피는 포기하고 화장실을 사용하기 위해 휴게소 뒤편 계단을 내려가다 그림 같은 풍경을 마주한다.
망양휴게소에서 바라다보이는 해파랑길의 모습은 절경이자 힐링이 느껴지는 길이다. 초여름 여행을 떠나온 내 마음과 같이 동해에는 잔잔한 파도가 일렁인다. 온통 하늘색으로 물들였다면 부담스러웠을 하늘 한쪽을 양떼구름이 차지하며 조화를 맞추고 있다. 양떼구름을 향해 둥글게 뻗은 도로마저도 자연의 하나인 양 자연스럽다. 해안가에 드문드문 검은 갯바위가 바닷가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도로변의 자그마한 연녹색 군솔과 노란색 들꽃이 초여름 아침 싱그러운 빛의 향연을 펼친다. 먼지 낀 오래된 도로의 가드레일과 파란색 차선마저도 신의 조화인 양 아름답게만 보인다.
망양휴게소를 출발해 황금울진대게 공원까지 아름다운 도보여행길이 계속된다. 이른 아침 이 길을 걷게 돼서 너무 다행이다. 드문드문 신(新) 국도의 차량소리 외에는 인위적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성시경을 들으며 경치에 빠져 한참을 걷다가 이어폰 사이로 들려오는 파도소리가 좋아서 이어폰 없이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해 본다. 바로 앞에서 들려오는 소리인가 싶어 귀 기울이면 저 멀리서 밀려오는 소리인 듯하다. 바다의 소리인가 하여 귀 기울이면 바람과 모래의 소리가 들린다.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길 위에서 만들어진 소리는 길이 나에게 선물하는 축복이자 내가 이 여행을 하는 목적이다.
도보여행길이라고 해서 모든 길이 아름답지는 않다. 구 국도를 따라 이어지는 망양휴게소에서 울진대게공원길의 해파랑길 24코스는 가장 아름다운 길로 나에게 기억될 것이다. 국도를 끼고 아름다운 바닷가의 풍경이 이어지고 차량의 통행이 빈번하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인지 국도변에는 차박을 하는 사람들도 꽤 보인다.
어느 60대 부부의 캠핑카 여행
사동항 인근 팔각정을 지나다가 좀 쉬어야겠다 싶어서 팔각정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내가 도보여행 중 좋아하는 간식은 편의점에서 파는 생크림빵이다. 좀 올드하기는 하지만 보관하기도 편하고 익숙한 맛이기도 해서 여행 중에 자주 먹는 편이다. 팔각정에 생크림빵과 물을 꺼내고 있는데 60대 노부부가 커피를 권한다. 감사한 마음으로 커피를 받고 이야기 친구가 되었다.
이 부부는 청주가 고향이라고 한다. 아저찌는 정년퇴직한 지 6-7년쯤 되셨다. 군인으로 정년퇴직을 하셔서 연금으로 생활하신다고 한다. 퇴직 후에 캠핑카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망설이시다가 최근에 캠핑카를 구입하셔서 부부가 캠핑여행을 다니신다고 한다. 군 출신이시고 운동을 열심히 하셔서 인지 건강도 좋아 보이시고 연세에 비해 배도 전혀 없고 보기가 좋다고 말씀드렸더니 매일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신단다. 덧붙여 나이가 들수록 꼭 본인에게 맞는 운동을 해서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하신다. 30분쯤 여행과 노후에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졌다. 오전에 망향휴게소 인근 길이 너무 아름다웠다고 말씀드렸더니 그쪽으로 꼭 가보겠다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한다.
40대 후반부터 아내와 노후에 대해, 더 정확히는 현재 직장 퇴직 후의 우리 삶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곤 한다. 아이들 문제, 경제적인 문제, 우리 부부의 나이와 건강문제, 부모님에 대한 문제 등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소위 말하는 FIRE족을 꿈꾸기에는 이미 늦어버렸지만 꿈꾸던 일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이야기를 나눈다. 하고 싶은 일을 구체화하고 해야 될 일과 하지 말아야 될 일을 정하고 시간을 정리하곤 한다. 하지만 언제나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미래도 중요하지만 현재가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현재와 미래가 조화된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휩쓸려 내 삶에 대한 정체성을 잃어버리지는 말자고 다짐하곤 한다. 오늘 내가 이 길을 걷는 이유도 어쩌면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후포의 사나이 최대리님
기성면의 작은 다방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후포에 도착했다. 수도권에 사는 사람에게 후포는 좀 생소한 곳이다. 나에게도 후포는 생소한 곳이지만, 나에게 후포라는 마을은 한 사람으로 각인된 곳이다. 1997년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의 직장에 입사해서 현장에 배치되었다. 군대에 입대하는 심정으로 안동의 현장에 갔을 때, 비쩍 마른 몸에 185cm는 되어 보이는 큰 키로 부사수를 받았다고 기뻐하던 사람이 이었다.
조금은 촌스러움이 묻어나는 최대리님은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이지만, 업무적으로는 지나치게 꼼꼼하고 일에 집착적인 전형적인 Engineer였다. 건설현장의 특성상 기숙생활을 했기 때문에 사적으로는 형님처럼, 업무적으로는 1에서 10까지 꼼꼼하지만 냉정하게 해야 할 일들은 지적하고 가르쳐 주었다. 이후 27년 동안 한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초창기 직장생활의 기본을 잡게 해 준 사람이 후포 사람 최대리님이다.
지금은 다른 회사에서 현장소장으로 근무하며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고 있지만 이 분의 고향이 후포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오고 건설회사에 입사하여 전국을 옮겨 다니며 일하고 있지만 고향 후포에 대한 애정이 대단한 사람이다. 후포의 음식과 생활들을 그리워하며 언젠가는 후포에 터를 잡고 살겠다고 말하곤 했다.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후포가 아닌 다른 도시를 옮겨 다니며 일하고 있지만, 후포하면 생각나는 사람은 내 사수 최대리님이고 아직도 내 머릿속에는 좋아라 소개해 줬던 후포의 음식에 대한 기억이 있다. 언젠가는 후줄근한 시장의 노상에서 가자미 회를 싼 값에 구입해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이 여기서 먹는 가자미회라라고 말해줬었다. 후포에 숙소를 정하고 시장거리를 돌아다녀 봤지만 그곳을 찾을 수는 없었다. 안부전화라도 한 번 해봐야겠다. 후포의 사나이 최대리님. 나에게 후포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