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나도 배낭여행이 가고 싶구나!
아들아, 나도 배낭여행이 가고 싶다.
2017년 어머니 생신이 다가오고 있었다. 주말에 본가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식탁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엄마, 이번 생신에 뭐 받고 싶은 선물 없어요?’
‘음… 사실은 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뭔데요?’
‘더 늦기전에 나도 너처럼 배낭여행이 가고 싶다.’
어머니는 성품이 활달하고 외향적인 분이다. 젊은 시절부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시고 여행하시는 것도 좋아하시던 분이다. 여느 아주머니들처럼 여러나라로 패키지 여행도 많이 다니셨다. 그런 어머니가 배낭여행, 자유여행을 해보고 싶은 이유는 두가지이다.
20대 시절부터 배낭여행을 해 온 아들을 바라보며 걱정이 앞서기도 했지만 당신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으셨다고 한다. 당시 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부담이 되시기는 하셨지만, 지금이 아니면 못 갈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말씀하셨다고 한다. 두번째는 짐작이지만 주변 아주머니들께 아들과 배낭여행을 했다고 말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나는 삼형제 중 맏아들이다. 덩치가 산만한 아들 셋을 키우신 어머니는 아버지를 포함해 무뚝뚝하고 건조한 전형적인 한국남자 넷과 평생을 함께 하셨다. 딸이 있었으면 함께 여행도 하고 투닥거리며 이야기도 많이 나눌 수 있었을텐데…. 어머니는 그런 즐거움은 누리지 못 하셨다. 물론, 그런면에서는 친구들에게 이야기할 거리도 없으셨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부분을 채우고 싶지 않으셨을까 싶다.
어머니의 말씀에 아내와 상의한 끝에 이번 기회에 각자의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나는 어머니의 건강과 연세를 고려해서 여행지를 대중교통이 원활하여 여행강도가 그리 세지 않은 대만으로 정했다. 그리고, 더 즐거운 여행을 위해서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을 동반하기로 했다. 이렇게 어머니와 아들 그리고 손녀, 3대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누구에게나 설레이는 여행의 출발
어머니와의 여행이여서 더위를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해 여름휴가를 최대한 늦춰 9월 초에 휴가를 냈다. 출발하기 하루전 날 어머니는 우리집으로 오셨다. 옷가지와 반찬, 큰 통에 가득한 약 그리고 셀레임을 가득 담은 캐리어를 가지고 들어오셨다. 저녁식사 후에 어머니와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어머니는 패키지 여행이 아닌 배낭여행을 원하셨기 때문에 숙소도 다소 불편하기는 하지만 게스트하우스와 비슷한 여건의 중급호텔을 예약했고, 교통수단도 가능한 기차와 버스,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어머니의 체력을 고려해 점심식사 후에는 가능한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더위가 수그러지는 늦은 오후에 다시 일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무리한 일정보다는 맛있는 음식을 다양하게 맛보며 즐기는 여행을 하기로 했다. 엄마는 다음날 아침 설레는 미소를 지으며 손녀의 손을 잡고 공항으로 출발하셨다. 출발은 모두에게 설레임이다.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한 어머니
여행중에도, 여행 후에도 어머니는 당신에게 많은 것들이 낯설고 신기한 것들이었다고 말씀하셨다. 당신에게 신기한 것들은 여행지나 관광보다는 오히려 부수적인 것들이었다고 한다. 대만 타이페이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유심을 교체했다. 유심교체가 처음인 어머니는 물끄러미 바라보시며 전화통화하는 방법과 간단한 인터넷 사용법을 신중하게 들으셨다. 대중교통 대신 지하철, 버스, 기차를 사용하기로 했기 때문에 우리는 대만의 교통카드인 이지카드를 유용하게 사용했다. 처음에 낯설어 하시던 어머니는 몇 일이 지나고 나보다 먼저 태그를 하시며 미소를 지어보이셨다.
'이거 뭐 우리나라 교통카드하고 똑같구나... 언능가자!!!'
여행을 가면 여행초기에 꼭 들르는 곳이 있다. 대형마트이다. 그 나라의 물가를 가장 빨리 확인할 수 있어서이다. 대만 여행에서도 숙소와 가까운 까르푸에 갔다. 평생 가정주부로 살아오신 어머니는 타국의 먹거리와 상품들을 관심있게 보셨다. 까르푸 식당가에서 덮밥으로 저녁식사를 하시며 타국에서 버스타고 대형마트에 와서 장을 보고 마치 자주 가시는 동네 이마트인 양 식당가에 앉아서 식사를 하시는 것이 신기하다고 말씀하셨다. 여행중 어머니가 가장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먹거리이다.
언제나 즐거운 먹거리 여행
우리 삼형제는 평균키가 180cm가 넘고 덩치도 모두 커서 어려서부터 삼형제와 엄마가 외출이라도 하게되면 엄마는 덩치 큰 똘마니들을 거느린 조직의 보스같아 보였다. 은근히 삼형제를 앞세우고 시장에 가시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셨던 것 같다. 어쩨든, 이 세 똘마니가 먹성도 대단해서 한끼 식사로 삼겹살 네다섯근 정도는 너끈했다. 물론, 삼형제를 낳은신 어머니도 만만치 않은 식성의 소유자시다. 당연히 이번 여행에서 중요하게 신경을 쓴 것이 먹거리였다. 대만을 선택한 이유중 하나도 한국인 식성에 맞는 먹거리가 많기 때문이기도 했다.
값비싼 음식보다는 시장에서 파는 음식, 길거리 음식, 블러그나 구글맵 평점이 좋은 식당을 위주로 다녔다. 공항에서 숙소로 이동하다가 지하철 지하 매장에서 마신 버블티. 버블티가 처음인 엄마는 대만의 덥고 습한 날씨에 시원하셨는지 더위를 식히며 커다란 플라스틱 컵 속의 버블을 쳐다보셨다. 대만은 일본식당들이 많고 분위기도 일본풍의 식당들이 참 많은 곳이었다. 일식 도시락, 스시, 라멘 등 일식도 만족스러워 하셨고, 마라훠궈, 새우와 게 요리 등 중국풍요리도 좋아하셨다. 디저트나 간식으로는 망고빙수, 대왕카스테라, 소세지 구이 그리고 또우지앙( 豆浆)이라는 상품명으로 판매되는 순두부 비슷한 간식을 가장 좋아하셨다.
대만여행중 가장 좋아하신 음식은 비싼 일식집이나 중식집에서 드신 음식이 아니라 길거리를 지나다니시며 볼 때마다 사 드신 또우지앙(豆浆)이라는 순두부와 숙소앞 시장에서 파는 아쫑미엔시엔(阿宗面线)이라는 곱창국수였다. 입맛에 딱 맞으신다고 하셔서 몇 번을 드셨다. 마지막날 아종면선을 저녁식사로 드시며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대만에서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지만, 제일 좋았던 것은 현지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어서 좋았고, 내가 먹는 음식을 직접 선택하고 음식이름을 알고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패키지 여행이 친구분들과 같이 다니시기 때문에 언제나 떠들썩하고 즐거웠지만, 식당에 가면 식당에 둘러앉아서 주는 음식을 먹었기때문에 내가 먹는 음식을 선택할 수도 없었고 이름도 모르고 드셨다고 한다. 대만여행에서는 식당을 찾아 메뉴를 보고 음식을 주문해서 식사를 했다. 여전히 음식의 정확한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떤 재료로 만들어진 어떤 맛이었는지 기억이 모두 나신다고 하셨다. 자유여행이 좀 고되기는 하지만 먹거리를 선택해서 여유롭게 식사하는 즐거움이 큰 것같다고 말씀하신다. 이후로도 어머니는 딸아이와 똥장(또우지앙-豆将),곱창국수(아종면선-阿宗面线)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대만여행을 회상하시곤 하셨다.
여보!!!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냅시다.
어머니와의 여행은 평소 여행보다 천천히 움직였다. 중국 고대문물의 보고 고궁박물관. 어머니와 오랜만에 함께 온천을 즐길수 있었던 우라이온천. 너무 더워서 애를 먹기는 했지만 다른 행성에 온 듯한 느낌의 예류지질공원, 영화 '센과 히치로'의 배경이 된 지우펀. 그리고, 어머니의 마음을 엿볼수 있었던 핑시선 기차여행.
핑시선은 본래 우리나라의 V-TRAIN처럼 탄광지역을 연결한 지역열차였는데 탄광산업이 사향길을 접어들면서 관광열차로 바뀌었다. 저속으로 산악지역을 달리는 관광열차가 된 핑시선은 역마다 조금씩 다른 컨셉을 가지고 꾸며져 있었다. 고양이 마을이 있는가 하면, 풍등으로 유명한 마을이 있고, 먹거리 식당이 끝없이 늘어선 거리도 있어 많은 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다. 그 가운데 대나무통에 소원을 적어 걸어두는 마을 있었다. 딸아이와 어머니는 각자 소원을 적어 걸어두기로 하고 구석에 앉아 소원을 적는다. 딸아이의 대나무통 소원에는 '우리 아빠가 밤에 잘 때 끙끙대지 않게 해 주세요. 건강하게 해주세요'리고 적혀있었다. 천식이 좀 있는 나는 밤에 끙끙거리는 버릇이 있는데 몇 일동안 한 방에서 자던 딸아이가 들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대나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00씨, 여보!!! 건강하시고 행복하게 삽시다.'
아버지 건강이 좋지 않으셨다. 수술과 입원이 몇 차레 진행되면서 예전같은 기력좋은 아버지의 모습은 사라지고 몸무게가 빠지고 주름이 늘어 장년의 아버지는 어느덧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당신의 배우자가 이제 지병을 가진 노년이 되신 것이 못내 안타우셨던게다.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이야기하신다. '느그 아부지땜에 내가 못살겠다. 말도 안듣고 어찌나 까탈스럽고 고집스럽운지 도망이라도 가고 싶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도 어머니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것, 건강에 좋은 음식들을 끊임없이 찾아나서고 준비하신다. 팔순에 가까운 나이가 되셨지만 가끔 여전히 전쟁을 치루시지만 여전히 어머니는 아버지 걱정이시다. 대나무통에 쓰신 소원이 쑥쓰러우셨는지 아무 말없이 걸음을 재촉하신다. 그 날 저녁 아버지는 어머니가 고되하지는 않으시는지 확인하는 전화를 하셨다. 대나무에 소원을 걸어 올리지는 못했지만 '아버지, 어머니, 사랑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그리고, 이제 전쟁은 그만하시죠..... '
발마사지 그리고 귀국
귀국전 날 저녁 어머니와 발마사지를 받으며 여행에 대히 이야기를 나눴다. 괜찮았냐는 나의 물음에 재미는 있었는데 몇 번은 힘들었다고 고백하셨다. 혹시나 여행에 방해가 될까봐 이야기하지는 않으셨지만, 땡볕에 오랜시간 노출됐던 예류지질공원에 갔을 때는 화잘실에서 혼자 청심환을 드셨다고 하셨다. 아들 걱정할까봐 이야기하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셨으면 더 쉬엄쉬엄 갔을텐데... 뭐가 제일 좋았냐는 질문에는 버스타고 기차타고 다니는 것도 재미있었고, 여행하며 그때 그때 먹는 음식도 좋았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혼자 말처럼 '다시 올 수 있을까'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다시 오면 되지 왜 못 와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렸다. 2018년, 2019년은 아내 그리고 자식들과 여행을 했고, 2019년 말에는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었다. 부모님은 이제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셨다. 어머니는 코로나와 지병이신 천식때문에 외출도 줄이시고 건강이 좋지 않아서 우울해 하신다.
'코로나때문에 밖에는 못나가는데 좋은 세월은 계속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팬데믹이 빨리 지나가고 놀러다니시기 좋아하는 우리 어머니, 국내여행이든 해외여행이든 신나게 여행하시길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