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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형 Apr 24. 2022

봄날의 산책

나는 느릿하게 혼자하는 산책이 좋다.

          인사이동으로 가산디지털단지의 사무실로 출근하게 되었다. 정신없던 첫 주가 지나갔다. 3개월동안의 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터라 더 정신없게 한 주를 보냈다. 선후배들의 안부전화, 새로 발령받은 사무실 사람들과 인사, 그리고 새로 부여받은 업무파악에 바쁘게 한 주가 지나갔다. 건강이 어느정도 회복되어 일상을 되찾는다는 안도감이 있기는 하지만, 늦잠과 늦은 아침, 한가한 책읽기와 커피, 느릿하게 자전거타기로 채워넣은 3개월이 지나고 다시 바쁜 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무척이나 아쉬운 일이다.


          사무실 근처에 한가하게 산책할 곳이 없을까 찾아보다가 안양천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안양천으로 산책에 나선다. 봄날의 산책은 엷게 시작하는 녹음으로 가득했다. 지난주까지 하얀 벚꽃으로 가득했던 길은 바람따라 흩어져버린 꽃잎을 대신해 연두빛 어린 새순으로 채워져 있었다. 벚꽃이 새신부의 치맛자락같다면 꽃이 떠난 옅은 녹음은 싱그러운 아가들의 미소같다. 나는 벚꽃의 가득한 아름다움도 좋아하지만 벚꽃이 지나가고 만들어진 옅은 녹음의 싱그러움을  사랑한다. 벚꽃산책은 누군가와 어깨를 같이하고,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감탄사를 날리고, 카메라를 들어 추억을 남겨야 어울리는 산책이다. 봄날 옅은 녹음속 산책은 이어폰을 꽂고 최대한 느릿한 걸음을 걸으며 홀로 잎사이로 스며드는 봄볕을 느껴야 어울리는 산책이다.


           점심식사를 간단히 하고 짧은 산책길을 재촉한다. 서부간선도로의 육교를 넘으면 오래된 나무들이 정렬한 안양천변 산책로가 있다. 벚꽃길로 유명한 이 길은 평소에도 점심시간 직장인들의 산책로로 사랑받는 곳이다. 느릿함의 즐거움을 알아버린 나는 짧은 점심시간이지만 느릿한 산책을 즐겨볼 요량이다. 봄날의 노래를 찾아 준비하고 최대한 느리게 걷기를 시작한다. 가끔 고개들어 봄볕을 쳐다보고 찡긋이 다가온 봄과 인사를 나누며 걷는다.


          천변길에는 아직 남은 벚꽃이 봄바람에 흩낱리고 벚꽃에 가려 보이지 않던 개꽃과 개나리가 피어있다. 벚꽃의 엷은 녹색 새순과 연분홍 개꽃, 노란 개나리의 색감이 어울려 봄날의 색을 보정중이다. 자연의 색에 사람들도 색을 더한다. 산책마저도 바빠보이는 셔츠에 짙은 바지를 입은 직장인들의 색깔 사이로 초록하고 노랑한 봄 옷에 색색의 스카프를 두른 중년의 여성들이 화사하다. 녹음이 만든 그늘에 때이른 돗자리를 깔고 간단한 점심에 이야기 꽃을 피우는 앳된 그녀들의 모습이 봄날만큼이나 예뻐보인다. 천변 아랫길로는 소풍나온 아이들과 바쁜 움직임의 선생님들이 봄 빛에 더해진다. 한적한 벤치에 햄버거를 꺼내놓고 꼼냥꼼냥거리는 젊은 연인의 모습에 슬며시 시선을 던져준다. 얼마지나 같은 벤치에서 삶은 계란에 막걸리를 한 잔하며 먼 시선을 던지는 노인장의 모습도 봄날의 모습에 묻혀 청승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나는 혼자하는 산책을 좋아한다. 속도를 맞출 필요도 없이 느릿하게 걸을수 있다. 대화에 집중하지 않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다. 나무, 꽃, 길, 사람을 느낄수 있다. 무엇인가에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이 홀로 하는 산책의 매력이다. 시간을 쪼깨고 할 일의 리스트를 만들고 network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혼자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언젠가부터는 혼자하는 시간이 불편하고 어색하게 된다. 수단이 목적을 전도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느릿하게 산책을 하고 다시 서부간선도로를 건너는 육교를 넘으며 시간을 확인한다. 점심시간이 5분 남았다. 인도를 꽉 채운 사람들 속에 묻혀 바쁜 걸음을 채촉해 사무실로 돌아간다. 시간은 여전히 정신없이 지나간다. 사무실 근처에 좋은 산책로가 있어서 다행이다. 돌아온 일상에 산책로가 있어 조금 행복해진 느낌이다. 나는 홀로하는 산책이 좋다. 봄날의 산책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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