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여행은 사랑을 싣고...
22살 그 여자는 막막하고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도로 배낭여행을 떠난다.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그 남자를 만난다. 운명이었는지 인도여행지에서 그 남자와 계속 마주친다. 머나먼 타국에서 우연이 연속되며 그 남자와 그 여자는 사랑을 느낀다. 한국으로 돌아와 두 사람은 재회를 약속하지만 결국 만나지 못하고 9년이라는 시간이 흐른다. 9년 뒤 그 여자는 첫사랑 그 남자를 찾기 위해 첫사랑 찾기 주식회사를 찾는다. 오직 알고 있는 것은 그 남자의 이름. 김종욱이다.
금요일 저녁 아내와 주말 계획을 세우다 대학로에 공연을 보러 가기로 한다. 아내의 폭풍 검색으로 찾은 작품이 '뮤지컬 김종욱 찾기'이다. 예전부터 제목은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어떤 내용인지는 전혀 알지 못하고 극장을 찾았다. 뮤지컬이 시작되고 나서야 여행이 모티브인 작품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행에 반쯤 넋이 나간 남편과 함께 사는 아내가 알았다면 아마도 다른 공연을 찾았으리라...
'김종욱 찾기'는 90년대 말, 2000년대 초 배낭여행의 낭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90년대 중반까지 유럽에 머물러 있던 여행지가 확장되고 있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이었고 SNS도 활성화되기 전이다. 여행자의 손에는 대동소이한 가이드북이 들려있었고 여전히 엽서나 편지로 소통을 하던 시기였다. 지금처럼 휴대폰을 이용하거나 SNS를 통해 여행자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던 시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청춘의 여행에는 언제나 사랑이 있었다. '김종욱 찾기'는 그 시절, 그 여자와 그 남자의 청춘 여행기이다.
그 여자는 인도행 비행기에서 처음 만난 그 남자와 헤어지며 '운명이라면 다시 만나겠지'라고 독백한다. 두 번, 세 번째 우연한 만남이 지속되며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머나먼 타국의 여행길에서 만난 그 남자와 다시 만난다는 것은 운명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건 운명이 아닐까?
아니다. 그 시절 여행지에서 우연한 만남은 운명이 아니라 어쩌면 필연이다. 당시 장기 여행을 했던 여행자들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여행 인프라가 아직 완벽하게 갖춰져 있지 않았던 그 시절 대부분의 여행자가 몇 권의 가이드 북에 의지했다. 같은 나라의 여행자들은 비슷한 유스호스텔이나 게스트 하우스를 이용했다. 비슷한 버스나 기차를 이용했다. 여행지나 관광지의 루트도 거의 비슷해서 어제 루브르에서 만난 사람들을 오늘 노트르담에서 만나고 저녁에 유레일을 타기 위해 파리역에 가면 그 이들이 배낭을 메고 바르셀로나행 기차를 기다리곤 했다.
유럽도 아니고 인도였다면 더욱이 같은 비행기로 같은 지역에 도착한 사람들은 비슷한 루트로 여행했을 것이다. 같은 루트가 아니었더라도 갈 수 있는 여행지가 한정되어 있었다. 운명의 만남은 필연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만나면 반가워 친구가 되었고 숙소라도 같이 쓰게 되면 운명인 양 반가워 어쩔 줄 몰랐던 시절이었다.
세상 어느 곳에서든 청춘남녀가 만나면 불꽃을 만든다. 특히 한 사람이 몸살이 나거나 앓아눕기라도 하면 만사를 제쳐놓고 지극 정성으로 간호를 하는 그 남자, 그 여자가 등장한다. 뮤지컬'김종욱 찾기'의 그 남자와 그 여자처럼 말이다. 두 사람을 남기고 외출하고 돌아오면 어김없이 연인이 되어 있는 둘을 바라보며 우리들은 말했었다. '난 왜 아프지도 않지. ㅎㅎㅎ'
운명은 아니었지만 청춘은 운명을 만들었다. 청춘의 여행은 필연적 운명이 필요했다.
뮤지컬 '김종욱 찾기'에서 여행을 마친 그 남자는 그 여자와 헤어지며 약속장소가 적힌 쪽지와 여행의 기록인 일기장을 건넨다. 요즘이라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공유하겠지만 당시에는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핸드폰도 대중적으로 보급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친구들과 헤어지면 급하게 주고 받았던 것은 집 주소와 전화번호 혹은 삐삐 번호였다.
'김종욱 찾기'의 디테일에 내심 놀란 것은 그 남자가 여행 일기를 그 여자에게 건넬 때였다. 20대 청춘이 장기여행을 하다 보면 그 여자(남자)를 만나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그 시절 사랑과 함께 한 여행을 기록할 수 있는 최고의 방식은 일기형식의 여행기였다. 두 사람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있을 뿐 아니라 여행 후에도 인연을 이어가고 싶은 애틋한 일기는 상대방에게 전달되어 세레나데가 되곤 했다.
여행 후, 그 남자와 그 여자는 혜화동에서, 강남에서 다시 만나보지만 여행이 끝났듯이, 여행 속 그 남자(여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여행을 함께한 반가운 추억만을 남긴 채 사그라져가기 마련이다. 그 여자가 김종욱을 찾았지만 추억만을 남겼던 것처럼...
20살 아름다운 그 시절, 뉴욕에서, 나이아가라에서, 리용에서, 파리에서 만났던 김종욱과 그 여자는 어떻게 지낼지? 우리들의 세레나데는 어디에 남아있을는지? 나는 여전히 김종욱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