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레스

by 제환

이름 없는 행성에 이방인들이 찾아온다.

그들은 행성에 발자국을 남기고 환호하며 갈취한다.

우리는 우리로서의 존엄을 잃는다.


탐사를 마친 이들은 더러워진 행성을 뒤로하고

다시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났다.

오염된 행성은 그저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볼 뿐이다.


그들은 행성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고 존재를 틀 안에 가두었다.

‘옥토퍼스’

이제부터 행성은 옥토퍼스라는 틀 안에 갇혀 떠날 수가 없다.


더러워진 형체도 자전도, 공전하는 모습도,

심지어는 터져버린 초신성의 모든 것까지

그는 틀 안에 갇혀 감내해야 한다.


커져가는 틀은

그를 담을 수가 없다.




여기, 늪 속의 악어는 통나무와 같다.

선천적으로 가지지 못했던 팔다리였기에

인간들은 그를 ‘그’가 아닌 통나무로 명명했다.


인간들은 그런 악어를 밟고 지나다니며

그를 통나무로 취급했다.

결국 악어는 통나무가 되어 딱딱해지는 갑피를 벗지 못한 채,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인간들은 그런 악어를

한심하게만 보았다.




인간의 틀을 뒤집어쓴 인간은

다른 인간들에게 가르친다.

우리의 주체는 ‘나’다. 나는 나일 뿐이다.


인간들은 그것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공식 외우듯 외운다.


자신을 ‘나’라는 타이틀에 넣어야 한다며

우리는 스스로 틀을 벗어나야 한다는

새로운 틀을 또다시 뒤집어씌운다.



그들의 틀 밖으로 머리를 내민다.

저 하늘에 뜬 달은 별이고, 해는 물이다.

나는 일부고, 나는 하나의 부품이다.


깨달음을 얻은 이들은

두려움을 폐 속에 욱여넣고,

결국 자신이 미쳐버렸다는 생각으로

눈을 지져 시야를 차단했다.


낮도 밤도 없는 어둠 속에서

그들은 미치광이처럼 웃는다.

자신은 여전히 평범한 존재라며

스스로 다시 틀을 뒤집어쓰려 한다.


땅속에 머리만 파묻고는

안전하다 외친다.

점차 타조가 되어가던 이들은

머리를 꺼내 우주로 날아간다.



나는 인간도 무엇도 아니다.

악어도 타조도 아닌 존재다.


모든 것을 부정함으로써

틀이 제 기능을 못하게 한다.

폐기물 아닌 폐기물이 되어

그들의 틀을 벗어났다.



천천히 부유하는 우주 속에서

들려오는 진동에 눈을 뜬다.

공명한다.


낯선 우주와 우주가 충돌하고 마주한다.

우리는 얼굴 가죽을 벗어 보았다.


벌거벗은 몸뚱이 너머로 보이는 얼굴에는

반대 방향으로 공전하는 우주가 있다.

공전하는 소리가 울린다.

각기 다른 음을 느끼며

우리는 마침내 우리의 존재를 확인하여

머리를 마주한다.



여기는 폐허 된 우리의 은하군.

인간 속에 숨은 낯선 우주를 찾기 위해

오늘도 살아간다.


길 잃은 은하들은

언제나 무전을 달라.


나는

여전히 황무지 된 우주들을 위해

무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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