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 앞서 _ 영국에서 살아간다는 것.
오, 런던! 마이 런던! 이라는 제목으로 빅이슈 코리아에 칼럼을 올렸던 때를 기억한다. 2016년 10월,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의 그 날은 내가 영국에 살고자 많은 것들을 고민했던 때였다. 한국에서 모았던 돈을 탈탈 털어 비행기값, 초기 정착금을 준비했던 그 때의 나를 떠올리면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는지 참 신기할 뿐이다.
정당히 일하고 정당히 버는 삶, 직업이 꿈이 되지 않는 삶, 꿈이 진화하는 만큼 내 자신도 진화하는 삶, 남의 기분 말고 내 기분을 살피는 삶, 누군가가 내게 나이를 묻고, 그 나이를 빗대어 내가 이뤄야 할 과제를 주지 않는 삶, 내가 조금은 다르고 조금은 느려도 구박 받지 않는 삶, 미래를 위한 삶이 아닌 오늘을 위한 삶. (빅이슈 코리아 2016년 10월호)
이 삶들을 위해서 였을까. 그렇게 나는 미래에 대한 확신은 쥐뿔도 없이 이 타지에 발을 들였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용기란 본디 쓰고 나면 소멸하는 허무한 감정이라, 내가 한국에서 쌓아온 용기는 금새 타지의 차가운 환경에서 조금씩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에 있는 익숙함의 울타리 안에선 전혀 발생하지 않을 일들을 겪다 보니 점점 지쳤던 것이다.
브렉시트가 터지기 3일 전에 입국한 터라 지하철 입구 앞에서 LEAVE란 팻말을 들고 서있는 사람들의 찝찝한 눈길들을 받아야했고, 수많은 이력서와 면접을 거듭했으나 몇 달 동안이나 구해지지 않는 일자리 문제에, 1년에 한번 당하기도 어려운 사기를 두번이나 당하기까지 했다. (이것에 대해선 한이 서려서인지 너무나도 할 말이 많다. 영국에서 당하기 쉬운 부동산 사기에 대한 특집 칼럼을 써야할지도.)
내 눈 앞에서 점점 쓰임을 다해가는 용기의 잔량을 확인하곤 덜컥 겁이 난 적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당장이라도 비행기 티켓을 사서 지구 반대편으로 다시 돌아가고만 싶었다. 내가 원했던 자유로움, 그 자유로움엔 책임이 따른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외국에서 산다는 것은 화려함보단 혼자만의 고독한 싸움과도 같았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멘탈이 거의 비브라늄급으로 유지가 될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분인지도 모른다. 비록 부정적인 일이라도 이 말과 함께 쓰면 무언가 긍정적인 일을 해낼 수 있을거란 믿음이 내비치기 때문이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있듯, 나쁜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예를 들어,
외국에선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변수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확실한 결과나 미래에 대한 보장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변수들 덕분에 더 다양한 사람들과 예기치 못한 기회를 마주할 수 있었다.
도와줄 사람이 많지 않은 타지에서는 안좋은 일이 일어나도 그 책임을 오롯이 혼자 져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산전수전들은 나를 보다 더 단단하고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게 만들어 주었다.
가족과 친구들, 모든 익숙함에 떠나 생활하는 것은 너무나도 외롭고 힘든 결정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떨어져 있음으로써 내가 익숙했던 것들에 대한 소중함과 소소한 것에 대한 감사를 마음 깊이 깨닫고 더 잘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물정 모르는 타지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건 너무 길고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구하는 과정에서 내 문제점과 해결 방법을 깨달았고, 일자리를 막상 한번 구한 뒤에는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살아간다는 것.
한번은 뉴욕에서 댄서 생활을 하다가 런던으로 이사를 오게 된 친구를 저녁식사에 초대한 적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둘 다 프리랜서인 입장이였기에 안정적이지 못한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참 많이 했던 저녁이였다. 런던의 첫인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말했다.
"런던은 뉴욕 같아. 용서가 없는 도시라고 해야하나.
매일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에 대해 신경쓰지 않잖아."
"London is like New York, the city of unforgiving.
If we don't act or move forward everyday, no one gives a xxxx about us."
영국에 살기 시작한 초반 쯤, 누군가가 내게 '영국에 사는건 어때?' 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냥 '산다'는 것이 아닌 '살아가는' 것이라고 대답했던 이유는, 내겐 영국에서의 생활이 매일 벽을 깨어나가는 과정이였기 때문이다.
어떤 국가든 낯선 곳에 혼자 자신을 내던지는 것은 굉장히 무서운 일이다. 내게도 마찬가지였다. 아무것도 없는 타지에서 일과 집을 구하는 것부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언어로 소통하며 그 다음의 관계를 모색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마치 게임의 퀘스트 같은 느낌이 드는 날엔 한번씩 우울한 감정이 날 찾아왔다.
그러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그 벽은 어느 순간부터 줄어들기 시작했다. 낯섬이 익숙함으로, 차가움이 따뜻함으로, 다름이 어느정도는 비슷함으로 바뀌는 순간이였다. 내게 '살아가는'것의 의미는 앞에 '함께'라는 단어가 붙음으로써 전혀 다른 뜻이 되었다.
물론 그 벽들이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다. 가끔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며 한번씩 찾아오는 벽을 마주한다. 하지만 예전과는 사뭇 다른 감정이 생겼다. 단순한 두려움과 지침이 아닌, 기대감이란 감정. 오늘은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기회들을 마주치고, 어떤 것들을 이뤄낼까. 나는 오늘 또 얼마나 발전하게 될까? 라는 설레임도 함께. 그렇게 나는 지금 런던에서 살아나가고 있다.
오, 런던! 마이 런던!
지금에 비해 한참 앳되어 보이는 에단 호크는 책상 위로 올라서며 이렇게 외쳤다.'오 캡틴, 마이 캡틴!' 그가 자신의 인생을 제시해준 스승에게 표할 수 있는 최후의 진심이었다. 나는 영국을 만나, 그리고 런던에 살게 되며 많은 것을 배웠다.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모여 피 터지게 경쟁을하는 도시. Carfediem의 자세를 실천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내가 갇혀 있었던 한정된 가치관에서 비로소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는 아직 알 수 없다. 내가 평생을 여기에 정착하게 될지, 아니면 언젠가 매일 무언가의 벽을 깨어가는 과정에 지쳐 익숙한 이의 품으로 돌아가게 될지. 그 누구도 미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언젠가 이 긴 여정이 끝날 때 쯤 외칠 수 있지 않을까? 오, 런던! 마이 런던! 이라고. (빅이슈 코리아 2016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