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뮤다 트라이앵글

영국에서 집 구하기 1편

by 정지은 Jean

버뮤다 트라이앵글 1편


맨 처음 고향을 떠나 대학 기숙사에서 입주했던 날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조그마한 방, 낯선 세사람, 이층침대에서 누웠을 때 코 앞에 다가온 그 낮은 천장까지. 창문 틈새로 넘어온 밤의 빛깔인지, 아스팔트 벽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던 그 좁디 좁은 방에서 참 많은 감정들이 들어섰다. 두려움, 기대감, 설렘, 외로움 등... 포화된 감정들이 내 목을 간질이던 밤이였다.


영국에서 내가 처음 가져본 '내방'


언제나 내게 첫날의 밤은 깊고 고독했다.


내가 영국이란 땅에 처음 발을 디뎠던 건 4년 전 교환학생 때였다. 그 흔한 유럽 환상 따위, 영국에 대한 지식 따위 전혀 없었다. 단지 내가 희망했던 다른 국가에 있던 학교의 기숙사비가 예기치 않게 올랐다는 이유로 신청 직전에 지망을 바꿔서 오게 된 곳이였다. 그렇게 만난 영국의 뉴캐슬(Newcastle)이라는 도시의 첫인상은 글쎄, 그렇게 Nice 하지만은 않았다.


떠나기 직전 아르바이트와 다른 일들로 바빠 정말 내 몸과 옷가지들만 챙겨서 온 것이 화근이였다. 밤 늦게 도착하자 마자 멘붕이였던 건, 일단 모든 상점이 저녁 5시 쯤이면 문을 닫아서 생필품을 살 곳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플랫 메이트들은 아직 입주를 안한 상태라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었던 나는 그렇게 영국에서의 첫 교훈을 얻게 되었다. '타지에서는 혼자 감당할 만한 시련이 모두 오게 된다.'는 것.


히터도 고장난 1월의 그 추운 겨울 밤, 텅 빈 매트리스에 옷가지만 깔고 잠을 청했던 그 시간을 잊지 못한다. 정말 덜덜 떨면서 머리 속으로 내 생애에서 제일 심한 (쌍시옷자 격하게 들어간) 욕을 했던 것 같다. 그 뒤로도 한국에선 익숙치 않은 Auto Lock 도어 때문에 내 방에서 내가 쫓겨난다거나, 엘리베이터 틈 사이에 열쇠를 떨어 뜨려 강제 올드보이로 기숙사 안에서만 지냈다거나... 기숙사와 나만 아는 격렬한 사투를 이어갔던 것이 지금 생각하면 추억은 개뿔, 아직까지도 내 스튜핏함에 한숨이 나온다. 그 땐 진짜 이 지긋지긋한 곳, 절대 돌아오지 않아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왜 영국인걸까. 생각해보니 그렇네.



뉴캐슬역에서 런던역으로. Stage 1에서 최종보스로.


버뮤다 트라이앵글의 시작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영국에 다시 돌아가겠다 마음 먹었을 때, '이전에 영국에 일 년 살아봤으니 이번엔 껌이겠지' 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 얼마나 애송이 같은 생각이였는지 모르겠다. 뉴캐슬에서의 생활이 게임의 Stage 1 정도라면 런던은 거의 최종보스 급이기 때문이다.


런던은 정말 크고 바쁜 도시다. 프롤로그에서 말했듯, 정말 용서 없는 도시. 내가 나아가지 않으면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나는 런던에서 정착하는 과정을 버뮤다 트라이앵글이라 불렀다. 영국에서 완전히 정착하려면 필요한 세가지가 있는데 바로 집, 일자리, 그리고 은행계좌다. 이 세가지 요소가 충족되지 않았던 내 초반의 런던 라이프는 나를 뫼비우스의 띄마냥 옭아매기 시작했다.


대충 내가 겪은 버뮤다 트라이앵글의 루트는 이렇다.


1. 방을 구하러 간다 - 주인이 Professional 인지 Student인지 묻는다. (직장인이냐 학생이냐에 따라 구할 수 있는 플랫과 방의 종류도 달라진다. 집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월세를 낼 경제적 능력이 있는 세입자가 우선이기 때문에 일반 매물을 보러 다닐 땐 직업이 있는 직장인의 경우가 플랫을 구하기 쉽다. 물론 학생‘만’ 받는 학생용 건물도 있다.)


2. 그래서 이제 직업을 구하러 간다 - 영국은행에 내 명의로 된 계좌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월급을 위해, 그러니 정말 중요하다.)


3. 그래서 계좌를 만드려고 은행에 간다 - NI (National Insurance) 넘버가 있어야 계좌를 열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그 외에 거주지 확인을 위한 다른 수단이 있으면 상관 없겠지만 나같이 처음 영국에 와서 정착하는 사람에겐 NI 넘버가 확실한 옵션이다. 이 NI 넘버라는 새... (아, 방금 아주 나쁜 욕이 다시 생각났어...) 아니 녀석은 실제 거주지에 편지를 발송하는 식으로 발급하는데 보통 3주, 길게는 한달 넘게 걸린다. 이 편지 시스템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심정은, 마치 공인 인증서를 처음 접했을 때의 내 마음과 같았다. '해커를 막아야지 왜 나를 막고 있는거니?' 라고 멱살을 쥐고 물어보고 싶은 그 분노.


어쨌든 편지를 수령할 실 거주지가 있어야 하니 다시 '1번, 방을 구하러 간다.'로 돌아간다. 무한 반복이었다. 나는 이 지옥의 버뮤다 트라이앵글에 갇혀 거의 한달을 보냈고 주위 사람들의 '먹힐 수도 안먹힐수도' 확률의 조언을 통해 겨우 그 트라이앵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구전동화로만 접하던 NI넘버라는 녀석을 만났을 때 내가 느꼈던 카타르시스를 아직까지도 잊지 못한다.



영국에서 집 구하기 2편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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