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주, 그 중의 주 (Main)

영국에서 집 구하기 2편

by 정지은 Jean
우리집 동네, 을씨년한 초봄 2017


의식주 중의 주 (Main)


자취 6년차,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이사는 어렵지 않다. 이사를 할 집을 구하는 것이 어려울 뿐이지. 도대체 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벌써부터 옛기억의 짠내가 올라온다.


내가 맨 처음 런던에서 봤던 방은 정말 강도당하기 딱 좋은 비주얼이였다. 창문에는 무슨 짓을 했는지 깨져있는 데다가, 금상첨화로 도어락까지 고장이였다. 오래되고 낡은 집이란 건 뭐 말할 필요도 없었고.


나 : 저거 깨졌는데 주인한테 말해야 하지 않겠니?
(내가 들어가기 전에 고쳐놔, 안그럼 너랑 계약하지 않겠어의 함축된 표현)

에이전트 : 괜찮아. 저거 이중창문이라 한쪽 깨져도 바람 안들어와 걱정마 (찡긋)


아니, 지금이 원시시대도 아니고. 내가 비를 피하고 바람을 안맞으려고 집을 구하고 있니?


라고 따져 묻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그냥 다른 뷰잉 약속으로 넘어갔다. 이런 뷰잉을 도대체 몇번이나 갔던건지. 정말 이상한 방들이 너무 많아서 나중엔 얼마나 봤는지 세는 것을 포기할 정도였다. 런던을 홍길동마냥 동서쪽으로 번쩍거리며 얻은 사실들은 이러했다.



1. 런던 물가는 살인적이다. 한국에서 복층 오피스텔에 떵떵거리고 살 돈으로 내 몸 하나 누이는 감옥 같은 방에 살 수 있다. 주거비가 생활비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런던의 집세를 아끼기 위해 스페인에서 비행기로 통근한다는 해외토픽을 보면서도 '에이 너무 자극적이게 만든 뉴스 아니야?' 라고 비웃었던 지난 날의 어리석은 나를 반성한다. 진심으로 뼈저리게.


예전엔 동쪽이 조금 더 싸고 서쪽이 비싼 동네라고 했는데 요새 이야기를 들어보면 요즘 동쪽도 쇼디치 같은 힙한 곳이 점점 뜨고 있는 추세라 방 가격이 점점 비싸진다고 한다. 결론은 런던은 다 비싸다. 정말 대나무 같이 한결같은 동네다.


2. 부동산 사기가 생각 외로 많이 벌어진다. 영국에서 내가 방을 구할 때 자주 쓰는 사이트들이 있는데 내 경우에는 스페어룸이란 사이트를 참 유용하게 썼다.


(그렇게 두번 유용하게 쓰고 두번 사기를 당했다. 나는야 유용한 호갱)


두번 사기를 당했던 건 사실 사이트의 잘못이 아니라 날 이용한 사기꾼들 때문이였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면서 부동산 에이전트에게 들은 말로는 영국 매물 60퍼센트 정도는 집주인이 에이전시를 통하지 않고 일년 이하 단기간으로 세입자를 받는 형태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단기간의 방을 구할 수 있지만 나중에 사기를 당해도 법적으로 보호 받을 수 있는 길이 없어서 조심해야 한다고 가르쳐줬다. 나는 그래서 현재는 무조건 부동산을 통해 계약한다.


3. 모든 광고에는 진짜 의미가 숨겨져 있다. 검트리, 스페어룸 등의 매물 사이트를 이용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매물 홍보용 용어들이 있다. 이사를 몇번 반복하다 보니 마침내 이 용어들의 참뜻을 깨닫게 되었다. 적어놓고 보니 내 고등학교 시절 영어문법 필기노트같이 되버렸지만.


The heart of (장소)

지하철, 버스정류장에서 엄청나게 멀다. 주요 교통에서 10분 걸린다 = 전속력으로 뛰어서 숨이 턱까지 찰 때쯤 10분 걸림


Cozy room

방이 심하게 아늑해서 발디딜 곳이 없다. 자칫하다간 컨테이너 보다 작은 박스룸에 살아야 할 수도 있다. (참고로 내 첫방이 그랬다. 마치 창고를 개조한 듯한 열악함이 일품!)


Friendly flatmate

케이스 바이 케이스겠지만 사생활이 없어진다. 가끔 쉬고 싶은 저녁에도 친목을 도모하는 그 우정 다지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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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화장실이 붐벼서 출근 준비에 차질이 있다 + 소음문제 (19금)


4. 치안은 정말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영국 가기 전에 많이들 고민하는게 치안 문제라는데, 나는 솔직히 딱히 치안이 좋은 동네라던가, 나쁜 동네를 구별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인종차별 관련해서 말하는 글들도 본 적 있는데 나는 딱히 인종차별이 어떤 특정한 동네에 머무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뭐, 나쁘게 말하면 인종차별은 어디든 존재한다는 거겠지만.


그렇게 얻은 현재의 방, 봄 2017


이렇게 나는 일년에 이사를 세번이나 했고 그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결론적으론 많은 교훈을 얻었기 때문에 이 개고생에 대해 불만은 없지만. 그렇게 방을 보는 안목을 높여 지금은 아주 괜찮은 위치의 괜찮은 방에 살게 되었다. 낮에는 햇빛이 마구마구 들어와 저녁형 인간인 날 강제 기상하게 만드는, 밤에는 달이 환하게 비춰 감상에 젖은 채 쇼파에 앉아 와인 두잔 하게 만드는 그런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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