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 혐오, 그리고 차별
테러는 일상을 파괴한다
오랜만에 일찍 잠에 든 날이였다. 딱히 마감을 지켜야 할 글도 없었기에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자겠노라 다짐했던 새벽, 나는 익숙하지 않은 소리에 잠에서 깼다.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옆집에서 새어나오는 파티의 소음이나 먹을거리를 찾으러 쓰레기통을 뒤지는 야행성 동물의 부산거림 정도가 아니였다. 창문을 열어 위를 쳐다 보니 헬리콥터가 주변을 날아다니고 있었고 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에서는 까만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 날, 집 주변에 있던 그렌펠 타워에 대형 화재가 났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한국에서 살 때의 나였으면 검은 연기를 본 순간, 분명 동네 어딘가에서 큰 화재가 난 것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머리 속에 제일 먼저 스친 생각은 달랐다.
'혹시 또 테러가 일어난걸까?'
테러는 일상을 파괴한다
내가 런던에서 제일 처음 일했던 회사는 런던의 랜드마크 중 하나라 불리는 The Shard에 위치해 있었다. 일층에는 공항에서나 보일 법한 검색대가 설치해져 있고 ID 카드가 없으면 출입이 절대로 불가하도록 완전통제가 이뤄졌다.
이런 근무 환경 때문이였을까, 같은 때에 입사했던 동기들은 한번씩 우린 목숨 걸고 일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며 시덥잖은 농담을 하곤 했었다. 만약 블록버스터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출되는 것 처럼 런던에 정말 큰 테러가 일어난다면, 그 표적은 아마 런던 브릿지 근처나 바로 옆의 이 높은 빌딩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 때문에. 그때만 해도 그건 정말 재미없는 농담에 지나지 않았다. 몇 달 후, 다른 회사로 이직하면서 적응을 해나가던 중, 나는 어떤 소식을 접했다.
6월 4일. 그 날은 챔피언스 리그로 주위 사람들이 들떠 있던 날이었다. 런던 곳곳의 스포츠 바에서 사람들이 들끓었고, 평소 같으면 맥주 몇잔에 만취한 채 어깨동무를 하고 집에 돌아가는, 아니 그래야만하는 날이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최종 승리,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뉴스가 뜨기 시작했다. 런던 브릿지 근처, 버로우 마켓 근처에서 테러가 일어났다는 뉴스. 순간 모든 기쁨과 일상이 일시정지가 된 듯 멈췄다. 불과 몇주 전 까지 내가 일했던 그 빌딩, The Shard 근처였다. 친하게 지냈던 동료들에게 급히 연락을 했다. 혹시 오늘 휴일 근무를 뛰지 않았나. 혹시 근처에서 일이 끝나고 저녁 한끼나 술 한잔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에 키패드를 치고 있는 내 손이 덜덜 떨렸다.
정말 다행히도 모두 다 괜찮다는 답장이 왔고 그제서야 떨리던 마음이 비로소 진정되었다. 그 날, 동시에 여러 장소에서 차량과 칼을 이용한 테러들이 발생했다. 대사관에서 위험 공지가 떴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괜찮냐며 연락이 왔다. 맨체스터에서 무려 22명의 사망자를 낸 폭탄 테러가 벌어진지 채 2주도 지나지 않았던 날이기에 사람들의 공포는 더 커졌다. 그 폭탄 테러의 메인 타겟은 아리아나 그란데의 공연을 보러온 어린 아이들이였다. 그리고 이 테러는 그저 버로우 마켓 주변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주말을 보내던 일반인들이였다. 결국 모든 테러가 지나간 자리에는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밖에 남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무력감. 그래, 제일 먼저 든 감정은 무력감이였다. 벌어지면 어떻게 손 쓸 새도 없이 퍼져나가는 것이 테러라는 것이었다. 테러, 한국에서 오래 살았던 나에겐 너무나 생소한 단어였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정부에 배신당한 요원이 복수를 명목으로 세계의 랜드마크를 폭파시키거나 사람이 많은 광장에 폭탄을 설치하거나. 아니면 중동지역의 모래 사막 위 부서진 건물, 참혹한 현장을 테러의 이미지로 떠올리곤 했다. 결코 내가 겪을 것이라 상상되지 않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만 같았다.
테러들이 일어난 후 나와 내 회사 동료들, 친구들, 그리고 나의 소중한 사람들까지, 다들 태도가 바뀌었다. 우리 중 누구에게 언제라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테러의 영향은 영국 사회 곳곳에 스며들었다. 큰 총을 들고 다니는 경찰들이 곳곳에 순찰을 다니는 걸 보게 되었고, 사람들이 북적이던 길거리에 추모의 글귀들이 쌓였으며, 사건 사고에 대한 뉴스가 떠도 '테러인지 아닌지는 확인 되지 않았다' 라는 말이 항상 서론에 붙었다.
더이상 우리의 일상은 예전처럼 돌아가지 않았다. 살아남지 못한 자들에 대한 살아남은 자들의 감정은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었다. 어떤 때는 무력감과 바닥 없는 슬픔으로, 두려움과 공포로, 때론 끝 없는 증오와 혐오로. 진짜 테러는, 테러가 끝난 뒤부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