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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은 Jean Sep 20. 2018

의미 있는, 의미 없는 관계

나에겐, 하지만 누군가에겐


그런 적이 있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날 소중하게 대하지 않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 때. 그 사이의 온도차를 견디기 힘들 때가 있다.


이십 대 초반엔 하나의 관계조차 포기하는 법을 몰랐기에, 모래알 같은 인연을 한 줌에 쥐어보려 있는 대로 씩씩대고 다녔다. 내가 누군가에겐 신경 쓰이지 않는 사람, 1순위가 아닌 사람이란 걸 받아들이기엔 내 마음이 너무 어리고 여렸던 건지도, 그래서 그저 상대방에게 소중한 사람으로 남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점점 시간이 지나다 보니 깨달았다. 가족이 주는 맹목적인 사랑처럼 내가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관계는 이제 더 이상 많지 않다는 것을. 이젠 어떤 영화에선 내가 주인공에게 영원히 사랑받지 못할 조연일 수도, 아니 조연도 되지 못할 엑스트라 일수도 있겠다고 말이다.


 

나는 관계에 있어서 익숙하지 못했다. 난 항상 모든 관계에 준 것만큼 받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등가 교환의 법칙을 적용했다. 똑같이 나눠가진 관계야말로 무엇보다도 공평하고 진정한 관계라 정의했고 그 이론의 오차범위를 이탈하는 관계에는 매달리고 징징대며 있는 힘껏 힘들어했다. 그 과정에서 항상 주는 것에 익숙했던 내가 피해자라고 생각했었다. 결국 끝에서 많은 것을 잃었고 상처 입는 건 나였으니까. 내가 상처를 받은 만큼 나는 바보 같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고, 내 마음을 거절한 이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이 잔인한 사람이라 생각하며 아파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쩌면 계속 주기만 한 내가 가해자일 때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를 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 내 감정이나 의지를 강요하는 것 또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라고. 어쩌면, 그렇게 많은 것들을 주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지금 더 나은 모양의 관계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나 또한 상대방에 비해 내겐 의미 없던 관계를 가진 적이 분명 있었다. 내 울타리 안의 감정만이 소중해서 상대방의 감정 같은 건 신경 쓰지 못하고, 그 과정에서 나오는 부수적인 아픔은 내 것이 아니기에 항상 웃고 넘길 수 있는 관계들. 그 인연들을 생각한다면 내가 지금 가질 수 없는 인연에 대해 억울해할 필요가 전혀 없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말처럼, 나 또한 누군가의 아픔일 테니 말이다.


결국 인간관계란 수수께끼와 같다. 풀려고 억지로 노력하는 순간 더 꼬이기도 하고, 결과보다 과정 안에서 해답을 찾기도 하는, 그런 수수께끼 말이다. 그리고 그 수수께끼의 답을 오늘도 나는 매 번 틀리고 있다. 


그 사실이 억울하진 않다. 이 세상엔 관계를 기발하게 이어 붙이는 방법 따윈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나만이 아닌 모두가 지고 시작하는 싸움이기에 분하지는 않다. 대신 나는 이제부터 여러 관계를 마주하며, 적어도 조금은 더 세련되고 덜 서투르게 물러나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적어도 누군가를 상처주거나 내 자신을 상처주는 사람이 되지 않을테니 말이다. 

 


인스타그램 @jeanbehere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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