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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은 Jean Sep 13. 2018

이룰 수 없는 로맨스라도 필요해

연애와 판타지의 사이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사람이 의식주가 충족되면 그때부터 새로운 자극을 모색하게 된다며. 그래서 등 따시고 배가 불러야 찾게 되는게 로맨스라고. 그런데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내 경우엔 의식주 중 어느 하나가 충족되지 않을 때도 항상 로맨스를 꿈꿨기 때문이다.



영화 북 오브 러브,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과 계속 편지를 주고받게 되고 결국 사랑에 빠지는 탕웨이.


그건 그냥 환상 아냐?
연애에 큰 기대를 버려!

항상 9시 50분 부터 티비 앞에 집합해 드라마가 시작하기만을 기다리는 나와 엄마를 보며 아빠는 항상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저런 남자가 이 세상에 있을 것 같냐'며, 다 환상일 뿐이라고 말이다.




사실 나의 연애 판타지는 다소 대중적인(?) 판타지다. 낯선 여행지에서 우연히 운명적인 만남을 마주친다는, 이른바 ‘비포 선라이즈’ 유형. 이 판타지를 친한 친구들에게 꺼낼 때마다 들은 나에게 시원한 등짝 스매싱과 함께 일침을 날렸다.

"평상시에는 보이지도 않던 남자가 왠 다른 나라 골목 구석에서 뿅하고 튀어나올 리가 있냐. 그리고 그렇게 잘 맞는 남자가 집에 기다리는 아내와 두 딸이 있지만 한 순간의 일탈을 노리는 놈팽이거나 나를 타겟으로 삼는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엉터리 물건을 사라고 유도하는 사기꾼, 혹은 여자 관광객을 노리는 인신매매 납치범이 아닐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 것 같냐" 며 말이다.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연애는 다 환상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 연애에 대한 환상을 가지는 이유가 뭘까 곰곰히 생각하니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애초에 판타지는 사랑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영화 세렌디피티, 한 번 만난 여자를 잊지 못한 남자.


사랑을 하는 이유는 상대방이 아니라
우리의 상상력 때문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가 말했다. 사람들은 연애 판타지라고 하면 뭔가 로맨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거창한 판타지만을 생각하는데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다. 로를 자세히 알기 전, 작은 디테일로 인해 사랑에 빠지는 것부터 상대방과 자신의 공통점을 긍정적으로 끼워 맞추며 밝은 미래를 꿈꾸는 것 까지. 연애의 시작은 결국 서로에게 비춰보는 환상으로 시작된다. 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흐뭇하게 지켜보는 썸남의 표정에서 '그는 가정적인 남자겠지' 식의 환상을 발현시키처럼 말이다.


내가 가진 판타지인 비포 선라이즈 유형도 마찬가지다. 사실 여행지에서 누군가를 만났다해도 그건 전혀 특별하지 않은 만남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간, 이 장소에, 이렇게 마주친 미스테리한 남자는 도대체 누굴까.'라는 상상력에서 나온 흥미.  모든 건 서로에 대해 알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대신, 서로의 다른 부분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기에 서로를 더 특별하게, 그 상황을 더 로맨틱하게 만들 수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판타지에는 맹점이 있다. 상대방의 좋은 면만 부각시키려는 노력만큼 단점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박력있는 점이 매력적이라 생각했는데 그저 자기 중심적인 성격으로 종일 끌려다녀서 힘든 성격이였다던가, 토론을 하길 좋아해서 지성이 넘치는 사람인 줄 알았더니 그저 승부욕이 강하고 이기는 것에 집착해서 항상 싸움을 일으키는 트러블 메이커였다 식의 결말 말이다.



If there's any kind of magic in this world... it must be in the attempt of understanding someone.
- 영화, 비포 선라이즈

하지만 판타지는 신기루 같은 것이여서, 결국 서로를 알아가다 보면 그 끝에서 모든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니 진실의 끝에 다다르기 전엔 조금의 판타지를 가지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상대방을 알아가는 재미. 사랑에 빠져가는 재미. 연애를 더 달콤하게 만드는 재미 등... 때론 판타지란 사랑의 재료들을 한껏 더 맛있게 버무리기도 하니 말이다.


제시와 셀린이 9년만에 재회하여 다시 사랑에 빠지는 장면



인스타그램 @jeanbehere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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