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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은 Jean Feb 25. 2019

치킨은 문 앞에 두고 가세요

THE BIG ISSUE KOREA 195호



이 세상에서 또라이가 가장 많이 모인 곳은 어디일까?  

정답은 ‘회사’라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나의 답은 ‘자취방 근처’였다. 대학 시절, 주변 지인들은 내 자취방 앞 골목을 ‘또라이들의 정모 현장’이라고 불렀다.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면 늦은 저녁 집 앞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가지고 나오는 길에 만났던 자식이다. 



옆에서 희미한 핸드폰 불빛이 비치기에 쳐다보니 전봇대 옆에서 바지를 내리고 있던 그는 왼손으로는 자기 위안을, 오른손으로는 그 행위를 핸드폰으로 찍으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도 못 들어봤냐!!!!”라고 고함을 지르며 동네방네 쪽이라도 줄 걸 그랬다 싶지만, 그 당시의 어렸던 나는 무서운 마음에 냅다 건물 안으로 줄행랑을 쳤었다. 


그 외에도 담배 피우는 척하며 내 자취방 창문 안을 계속 훔쳐보던 놈, 한밤중에 문을 쿵쿵 두드리며 들여보내달라고 소리를 지르던 놈 등... 온 인생을 통틀어도 만나기 힘든 이 미친 ‘놈.놈.놈’들이 내 자취 생활을 스릴러로 만들고 나서부터는 ‘8년 차 자취 여성’으로서 지켜야할 몇 가지 규칙을 익히기 시작했다.      




1. 창문은 무조건 불투명 시트나 전지로 꼼꼼히 가릴 것. 

2. 자기 전 보조키를 제대로 걸었는지 한 번 더 체크할 것.

3. 현관문에 남자 운동화를 놓거나 창문 쪽에 남자 속옷을 걸어둘 것.

4. 택배로 받은 박스에 붙은 종이는 분쇄기로 산산조각 내서 버릴 것. 

5. 배달 음식은 직접 받지 않고 문 앞에 두고 가달라는 메시지를 남길 것.

(현금 계산을 해야 하는 경우 1층으로 내려가서 받을 것.)

…     



이 번거로운 법칙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정기적으로 ‘성범죄자 알림e’ 앱을 통해 가까이에 거주하는 성범죄자들을 체크하는 일이다. 현재 사는 집 근처에는 강간 미수로 징역을 산 남성이 살고 있다. 여섯 번의 강간 및 상해를 저지른 사람이 살고 있는 이전 동네에 비해 조금은 나아졌다 말하기에도 뭔가 꺼림칙하다. 앱에 뜬 그들의 얼굴과 신상, 그리고 불과 1~2km도 안 되는 그들과 나 사이의 거리를 볼 때마다 등골이 쭈뼛 설 정도로 불쾌함이 밀려온다. 이 사람들이 내 주위에 살고 있다는 것이 소름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인생을 뿌리째 뽑아낸 범죄를 저지른 인간이 중년도 되지 않은 나이에 사회로 돌아와 우리 틈에 섞여 살아간다는 것이 더 소름인지는 아직까지도 알 수 없다.     



사실 자취하는 여성으로서 경계해야 할 것은 당장 집 근처에 있는 낯선 타인뿐만이 아니다.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내 이상형은 자취하는 여자야”라든가 “자취한다며? 남자 친구는 좋겠네~” 따위의 말이었다. 그들에게 자취란 나와는 사뭇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듯했다.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자취하는 여자’를 하나의 성적 이미지로 소비하는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당장 구글에 ‘자취하는 여자’라고 검색만 해봐도 내 안에 그나마 남은 인류애마저 멸종시키는 저질스러운 이미지와 글이 쏟아져 나오니 말이다. 하물며 자취하는 여성에 대한 성적 판타지를 바탕으로 한 야동도 있으니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사고 회로가 얼마나 뒤틀린 것인지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혼자 사는 여성의 두려움을 다룬 스릴러 영화가 개봉을 하고, 창문 잠금 장치나 경보기 같은 셀프 보안 템이 여성들의 장바구니에 담기며, #이것이_여성의_자취방이다 같은 태그와 함께 주거 공간 안에서 마주했던 성범죄와 스토킹에 대한 증언이 쏟아지는 미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이 사회에 만연한 두려움의 크기에 비해, 그걸 진정으로 공감하는 이들의 수는 많지 않아 속상할 때가 많다.


홀로 사는 여성의 집에 침입해 성폭행을 시도한 배달원, 자신이 배달을 갔던 약 70여 명의 자취 여성에게 사랑 고백 문자를 보낸 중국집 사장,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취할 수 없는 조치가 없다고 말하는 경찰. 이런 타이틀이 붙은 뉴스가 포털 사이트 메인을 허다하게 장식하는 와중에 “왜 남성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냐”, “요즘 여자들이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 “여자가 문단속을 잘못해서 그런 일이 벌어진 거 아니냐”는 댓글이 눈에 띌 때면 한숨이 절로 푹푹 나온다. 그들은 여성을 피해망상 환자, 별것도 아닌 일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예민보스’, 그리고 범죄의 원인 제공자로 치부하는 것이 각종 성범죄를 사회에서 뿌리뽑는 해결 방법이라고 여기나 보다.



한 번씩 지인들에게 “조심해서 나쁠 거 없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는데, 맞는 얘기인가 싶다가도 어딘가 분해진다. 이젠 바깥도 모자라 내가 내 집 안에서도 조심해야 한다니. 애초에 집은 내가 가장 편해야 하는 장소 아닌가. 내가 가정을 꾸리지 않는 이상 향후 최소 30년은 자취를 이어나갈 텐데,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할 이 공간에서 끊임없는 두려움에 갇혀 산다면 이건 집이 아니라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 아닌가. 진정으로 감옥에 갇혀야 할 이들은 당당히 사회에 나와 생활하고, 피해자들의 자취 생활이 수감 생활로 변하는 것도 참 웃긴 일이다.


누구나 자신의 집에서는 편안하고 싶다. 고된 직장 생활에서 돌아와 한적하게 쉴 수 있는 곳,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사생활을 보호받는 곳, 마음 편하게 두 발 뻗고 잘 수 있는 곳. 그런 곳에서마저도 굳이 불편한 일을 만들고 싶지도, 불편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여전히 치킨을 문 밖에서 받는 것이 문 안에서 받는 것보다 편한 세상에 살아가는 나로서는 이런 고민을 하는 사회가 서럽다. 언제쯤 '홈 스위트 홈'이라는 말을 마음 편히 쓸 수 있는 사회가 올지, 아직까지도 참 먼 미래의 일만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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