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보면 참 멍청하게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는 바람의 이유에 대해 '네가 항상 자신을 외롭게 만들어서'라고 말했다. 그러기에 그 마음의 빈 공간을 채우려 다른 여자를 만났대나 뭐래나. 그의 눈빛에 서린 뻔뻔함이 너무 당당해 순간, 내가 바람을 핀 사람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더욱 질겁했던 그의 마지막 수습이었다. 마치 주말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그 대환장 대본을 그대로 읽은 듯한 그 한마디.
"아냐 걘 그냥 한 번의 실수일 뿐이야. 나한텐 너밖에 없어. 다신 만나지 않을게."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그저, 굶주린 사람이었다.
사랑을 간헐적 단식마냥 하는 이들에게는 모든 선택들이 굶주림에 달려있다. 그 욕구가 충족되는 순간, 이제 그 허기짐을 채워줄 대상 따윈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그 사람의 고픔이 충만하게 채워지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아니, 애초에 채워지겠냐는 것이다. 그 밑 빠진 독 같은 바닥 없는 갈증이.
누구나 한번쯤은 나쁜 놈이 불쌍한 놈이 되는 합리화를 경험한다. 나 또한 그 예외는 아니었다. 처음엔 '내가 잘못해서 바람을 핀 게 아닐까. 이 사람의 심리적 상처에 공감해주지 못하거나, 내가 부족하고 부재한 부분이 이유가 아니었을까'라며 수없이 되짚었다.
하지만 하루에 한 번의 끼니를 연명하기도 힘든 개발 도상국의 아이들을 보고 동정을 할 순 있겠지만, 이런 경우의 나쁜 놈은 불쌍한 것이 아니라 그냥 XXX일 뿐이다. 자신이 가진 뒤틀린 인생의 가치관으로 인해 다른 이의 인생을 말아먹는, 그야말로 상대방의 영혼을 짓밟는 행위인 것이다.
나는 널 그냥 동정했던 것 같아.
그래서 나는 이 말과 함께 그에게 끝을 고했다. 최대한 단호하고 깔끔히. 사실 내가 모른 척하려 했을 뿐, 이 말은 너무나도 진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동정했다.
그를 처음 본 순간을 기억한다. 그 눈빛과 그 행동. '아, 이 사람은 사랑을 구원으로 생각하고 있구나'라는 사실을 단박에알아차렸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예전의 나도 그런 그와 같았을 때가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사랑을 받는 것만이 존재의 증명이 된다는 건 퍽 서글픈 일이기에, 그 감정을 알기에 그가 내민 손을 잡기로 결정한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정으로 시작된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를 동정한 만큼 어쩌면 나는 그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끊임없는 상처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그때의 결정을 후회하진 않는다. 오히려 후회하는 것이라 그나마 꼽자면, 그 사람을 향한 동정 때문에 그 사람의 뺨을 올려붙인 긴커녕, 독이 깃든 한마디 조차 내뱉지 못했다는 것 정도다.
마치 그 사람의 힘듦이 우리 모두 짊어져야 할 일종의 연대책임이었던 것처럼. 그래서 “그 여자가 나보다 너의 문제를 더 이해해주고 감싸줄 수 있겠지”따위의 생각을 하면서 그에게 안녕을 고했다.
그 후, 그는 몇 번 연락이 왔지만 나는 차단을 했고, 건너 지인에게 다른 여자를 다시 만나고 있다는 소식과, 또 얼마 안가 헤어졌다는 소식까지도 듣게 되었다.
(아직도 내 안에 인류애가 남아 있어서 그런진 모르겠으나) 부족한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것이 사람이다. 하지만 다음에, 혹여나 이런 기회가 생긴다면 다짐 정도는 한다. 정말 나쁜 말을 해서 지옥에 가더라도 바람피우는 XX들에겐 쌍시옷자 들어가는 욕을 시원하게 갈겨줘야지.
이 모든 것을 겪고 깨달은 건 세상 모든 것에는 서사가 있다는 점이다. 쓰레기에도 서사가 있다. 바람을 피우는 당연한 이유가 있고, 그들에겐 적절한 상황이 있다. 아마 온갖 변명을 쏟아낼 것이다.
그래 좋다. 사랑과 구원, 그리고 용서. 성서에나 나올법한 아주 그럴싸하고 아름다운 단어들이다. 하지만, 과연 그 단어가 저급하고 추악한 행동에 사용될 만큼 가치가 있는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결국 그들의 서사에 감정 이입하느냐 마느냐는 본인의 선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