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왜 날 버려?"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버려

by 정지은 Jean
tvN '남자친구' 캡처


며칠 전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박보검, 송혜교 주연의 드라마 '남자친구'의 클립 영상으로 날 이끌었다. 내가 본 부분은 극 중 (송혜교)가 박보검에게 이별을 고하는 장면이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박보검은 송혜교를 잡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자신에게 "나 많이 아낀다고 했죠? 나도 진혁 씨 많이 아껴요. 그래서 여기서 그만하려는 거예요. 힘들거나 두렵거나 하지 않아."라고 이별을 고하는 송혜교에게 박보검은 말한다.


"그런데 왜 날 버려?"


물론 댓글창은 난리였다. 그중 85%가 "박보검이 저런 눈빛으로 말하는데 어떻게 버리냐", "송혜교가 버렸으니 내가 주워와야겠다", "박보검 눈물을 담아 펜던트로 만들어 찰랑찰랑 들고 다니고 싶다"는 등, 말 그대로 박보검을 '남자친구'로 인식한 팬들의 글들이 이어졌다. 맞는 말이다. (나도 그러고 싶으니까.)


그래도 잠시나마, 이 클립을 보며 한참 동안 멍 때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박보검을 떠나서, 나 또한 사람이 사람을 버릴 수 없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상 속 눈물 콧물을 흘리는 박보검처럼, 먼 과거에 버려지는 것이 두려워 누군가를 붙잡고 절박해졌던 때가.




과거의 나는 '사람이 사람을 버릴 수 있다'는, 애초에 그런 명제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감히 어떻게, 누군가가 누굴 버릴 수 있냐고. 그때의 내게는 관계란 전혀 다른 공장에서 태어난 태엽 두 개를 시계에 맞추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태어난 사람은 없으니까, 그래도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점차 사람을 물건처럼 여기는, 쓰다가 안 맞으면 그냥 다른 물건을 사면 그만이라 치부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부터 그 믿음은 옅어졌다. "아, 이렇게 버릴 수 있는 것이구나. 그럼 나도 누군가를 앞으로 버릴 수 있겠구나. 효율을 따질 수가 있는 문제구나, 관계라는 건."


얼마 전, 10년 된 남사친과 술잔을 기울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모든 인간은 편의대로 움직여.
일도, 사람도, 관계도, 결국은 다 편의대로 선택하는 거라고.

그러니 지금은 말할 수밖에 없다. 편의로 뭉친 관계는 "버렸다"고 표현할 수밖에. 사람을 사람처럼 대하지 않고 물건으로 대한 관계엔 그런 표현을 쓸 수밖에 없다. 그 표현이 그 마음에 당한 자신을 더 괴롭고 옥죄게 만들더라도 말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되지만, 정작 시간이 지나보면 그것이 꼭 말이 안 되는 일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다. 그것에 씁쓸함을 느끼면서도 뭐 어쩌겠나. "결국은 편의대로 그도, 나도, 선택을 내린 것일 뿐이었겠지"라고, 또 한 번 생각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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