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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은 Jean Sep 09. 2019

명절 후에 오는 것들

미혼 여성의 명절이란


매년 명절 우리 집 제사상에 올라가는 차례 음식 중 하나는 새우튀김이다. 제사상에 올릴 음식은 손수 만들어야 한다는 대쪽 같은 가풍 아래 명절만 되면 할머니는 새벽부터 장을 봐오고, 엄마는 할머니 집에 도착하자마자 부엌에 뛰어 들어가며, 나와 여자 사촌 동생들은 이쑤시개를 든 채 씻어낸 새우들의 내장을 딴다.


그렇게 약 일곱 번째의 새우 내장을 이쑤시개로 쑤시고 있을 때였을까, 삼촌이 부엌으로 들어오며 ‘망언 부스터’에 부릉부릉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저번엔 좀 살이 붙었더니 또 이번엔 빠졌네~”

“요즘 진지하게 만나는 사람은 있나? 이제 슬슬 결혼해야지~”

“니 옆에 사촌 동생 하는 만큼이라도 내장 좀 잘 따 봐라! 시집가서 이쁨 안 받을 거가!”



그래, 참을 인 자 세 번이면 호구라고 했지. 그가 쏘아 올린 공(격)들이 내 심기를 건드린 순간, 나는 이쑤시개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영화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 스틸


나라고 매번 명절마다 밥상을 엎는 일이 즐거울 리는 없다. 사실 밥상을 엎는 것도 상당한 근력과 공간 지각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족끼리 하하호호 웃고 떠들어야 할 명절에 언성을 높이고 분노를 배출하는 이유는 가족, 그놈의 가족 때문이다.


사실 이 모든 서사는 아빠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나마 조금은 휴식이 가능한 명절 연휴에 겨울잠처럼 숙면을 취하고 싶었던 나의 심정과 달리 무척이나 들떠 있던 아빠. 결국 아침 댓바람부터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날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순간 욱하는 마음에 “아빠는 아빠 집에 간다고 신나겠지만, 나는 내 집이 제일 좋고 편하다고...”라고 중얼거렸다가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며 야단만 맞았다. 그렇게 입이 삐죽 튀어나온 상태에서 도착한 할머니 집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 리가.


명절이란 자고로 가족들이 오랜만에 만나 우애를 다지고 화목하게 덕담을 나누는 날이 아닌가. 하지만 언젠가부터 명절에 방문하는 친척 집은 내게 하등 도움될 것 없는 시공간이 되어버렸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차리는 제사상이, 밥알 하나 넘기기 힘든 세상 불편한 밥상으로 이어질 줄이야. 이번 해만큼은 고분고분한 명절을 보내려 한 나의 다짐은 개뿔, 삼촌의 연이은 점화 덕분에 산불처럼 타오른 분노는 결국 내 안의 이너 피스를 깡그리 증발시키고야 말았다.



영화 <기묘한 가족> 스틸


이 분노의 이유는 단순히 부엌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미혼 여성에게 명절이란 연말정산보다 혹독한 인생 감사 기간이다. 진지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람을 만나 효율적인 연애를 했는지, 사랑하는 사람과 미래를 꾸릴 만한 연봉을 받고 있는지, 만약 결혼하면 애는 가질 건지, 직장은 그만둘 건지….


하다못해 잠시 집 앞에 동네 친구를 만나러 갔다 와도, “오늘 잘 놀다 왔니?”라는 질문 대신 “그 친구 남편은 뭐 하는데? 너, 남자 소개는 안 시켜준대?”라는 질문이 따라붙는다. 이 정도면 오지라퍼가 아니라 오지 래퍼 수준이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가족들의 이 같은 질문 세례 앞에서 나는 죄인, 그것도 조선 시대로 치면 이 사회의 보편적 흐름에 역모를 품은 대역 죄인이다. 좋은 일을 한다는 일념 아래 감수하는 박봉, 결혼은 둘째치고 연애조차 불가능한 격주 매거진 에디터의 살인적 스케줄. 가족들의 눈에는 이 모든 요건이 당장 시집을 가도 될 신붓감은커녕, 당장 주리를 틀어도 모자랄 정도의 죄 인감이 틀림없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유죄>는 분명 나의 가족들이 쓴 책이 분명하다.)


미혼 여성으로서 보내는 명절의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이다. 남의 기준에 맞추지 못해 불행해진 내 인생을 한껏 폄하당하는 기간. 그러니 평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으면 오물거려 삼키지 못하고 입 밖으로 내뱉어야 속이 시원한 내 성격에 이 모든 비난과 부당함을 참고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또 분노의 파이어 볼을 던지고, 또 건방지다는 소리를 듣고, 또 저래서 시집가겠냐는 핀잔을 들었다. 아, 또 명절 18번 레퍼토리다. 가족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는 가족들에게 가족을 꾸리는 것이 행복한 일이라 추천받는 모순을 마주했다.


 



‘결을 맞춘다.’ 잡지를 만드는 일을 시작하고 나서 배운 어휘다. 예를 들어, 전체 디자인과 코너의 순서, 기사의 내용같이 잡지 흐름을 다채롭고 유연하게 맞출 때 하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눈에 보기 좋은 디자인이나,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기사가 아닌 한 명의 사람이다. 이 사회의 결을 위해 나를 맞추는 희생정신 따위는 눈곱만큼도 가질 생각이 없다. 애초에 결혼, 일, 육아 등 어떤 주제든 간에 남의 기준에 따라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한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짓이자 불행함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다.


나 혼자만의 인식으로 인해 이 모든 명절 분위기가 바뀔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망언 제조기인 삼촌이 자체 음소거하는 일도, 남자 사촌들이 안방에 눕는 대신 부엌에 앉아 함께 전을 부치는 일도 내 인생에서 목격하지 못할 불가능한 상황일 것이다. “왜 엄마만 일해요? 아니 아빠도 일하라 그래요!”라고 말하면 행여나 할머니가 들을라 내 입단속을 시키는 엄마, 엄동설한에 손을 호호 불어가며 차디찬 새우의 내장을 따는 여자 사촌 동생들을 보며 느끼는 씁쓸함이 그 증거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왕 가족들에게 죄인이라면 그 무게에 협박죄도 추가해보기로 했다. “계속 그렇게 오지랖 떨 거면 다음 명절부터는 내 얼굴 못 볼 줄 아세요”라고 선언하는 것. 나만이라도 그 변화의 첫걸음을 내디뎌보기로 했다. 가족을 이루지 못해 불완전한 반쪽짜리 인간으로 전락하기보다 내 행복을 향해 떠나자고 결심했다. 그것이 누군가의 눈엔 불행이자 고립일지라도.


그런 의미에서 이번 명절만큼은 새우튀김이 정갈하게 올라간 제사상 앞에 큰절을 하며 빌었다. “조상님이 저희를 보살펴주시고 계시다면 제발 ‘모두’가 함께 행복한 명절이 될 수 있게, 남들과 다른 것이 죄가 되지 않는 세상이 되도록 만들어주세요”라고. 그런 조상님이라면 뭐, 1000마리의 새우 내장을 따더라도 고생스럽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빅이슈 No.197 '요즘 여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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