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울에서의 일을 잠시 정리하고 고향에 내려온 이후, 가족들 중 아무도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저 밖으로 잘 나가지 않고 한번씩 아침에 일어날때마다 말보다 눈물이 먼저 나오는 나를 본 탓인지. 그 누구도 집안일을 소홀히 한다고 잔소리를 하거나, 서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 다그치진 않았다. 직업 군인인 오랜 친구가 붙여준 별명은 '관심병사'였다. 너무나 찰떡같은 별명에 잠시 폭소하다가도, 이내 공허한 표정이 되곤 했다.
그러던 날 보며 아빠는 무언가 결심이 섰나 보다. 평소 무심한 인물이라 어릴 때부터도 한번도 내게 말을 잘 걸어보지 못한 그가 어느 날, 내 방을 찾아왔다.
보통 그럴 때 마다 하는 이야기는 "밥 무라-", 혹은 "자나?" 두 가지 버전의 문장 뿐인데. 갑자기 아빠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아빠는 지난 겨울 상처를 크게 받았다고 한다. 친한 후배에게 감정적인 배신을 당했는데, 그 순간 혈압이 치솟아서 병원에 실려가기까지 했다고. 아빠가 병원에 간 사실 조차 모르고 있던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 왜 그때 말을 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빠는 그때의 일을 말하지 않은 건 평소 각별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던 자체가 너무 괴롭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워서 였다고 한다. 그러자 29년 동안 단 한번도, 엄청나게 멀어보였던 아빠가 굉장히 가까워보였다. 그 감정이 내가 현재 느끼고 있는 감정의 결과 같았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아빠는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상처받지 않는 것처럼 항상 활발했고, 사람들의 중심에 있었으며, 누구보다도 상처에 있어 단단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빠도 나는 그저, 사람일 뿐이었던 것이다. 상처에 아파하고, 배신에 무너질 수도 있는 사람.
특히나 '부끄러웠다'는 말이 너무나도 와닿았다. 나는 어떤 나쁜 일이 벌어지면 제일 먼저 나 자신을 자책했다. 그것이 언제부터 시작된 습관이었는지 모르겠으나 항상 잘못을 내 안에서 찾았기에, 배신을 당해도 내가 받은 상처가 내 선택으로 인한 결과물인 것 같아 숨기곤 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내 마음을 공격하는 일인 줄도 모르고선.
그후 아빠는 오랜 고통의 기간을 겪었다고 한다. 마치 하나의 강박처럼. 심지어 정규적으로 혈압을 체크하러 병원에 갈 때도 그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떠올랐지만 그때마다 아빠는 그 기억을 이겨내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렇게 가족의 얼굴을 떠올리고, 나의 얼굴을 떠올리니 그저 모든 인생사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말했다.
순간, 무언가 침대에서 일어날 힘이 생겼다. 누구에게 배신을 당해도, 누구에게 험한 말을 들어도. 그런 말을 하거나 행동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일 뿐. 그 외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 곱절로 많다는 사실을. 그리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내 곁을 지켜줄 가족들이 항상 든든히 있을거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나는 '별로'인 사람이 아닌, 그저 자랑스러운 사람일 것임을 복기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