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결국 선택과 책임의 문제

"이제 선택이 무서워요"

by 정지은 Jean

요즘 내 인생을 지켜보던 대학 후배가 말했다.


"누난 앞으로 인생을 능동적 말고 수동적으로 살아. 뭔가 결정할 땐 꼭 주위 사람한테 물어보고, 절대로 혼자 선택하지 마. 자기 주도적으로 살지 말라고. 무조건 선 보고, 후 실행. 알겠어?"


요즘 들어 점점 삶이 두려워진달까. 예전에 비해 선택을 내린 후 내가 질 결과와 책임이 커지고 나니 무서워졌다. 특히 타인에게까지 영향을 끼칠만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 후로부터는 어른으로서 기능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됐다.



재작년 영국에서 마지막 해를 보낼 때만 해도 내가 내리는 선택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막 살자'는 느낌까진 아니었고, 굳이 표현하자면 '떠밀리고 있으니 망설이지는 말자'는 식이었다.


어떠한 문제가 벌어졌을 때 타지에서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럴 때마다 빠른 결정을 내려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에 그렇게 아픔이나 고통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은 채로 살았던 것 같다.


그 선택이 다 옳은 것이었는지, 그른 것이었는지 알 길은 여전히 없다. 그를 판단하는 시간조차 없었고, 오히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은 낭비라고 생각했다.


인생에 있어서 옳고 그른 건 없어. 결국 선택과 책임이 있을 뿐이지.

옳고 그름을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그때, 그 순간 내렸던 선택들, 그로 인한 과거들로 빚어진 현재의 내 모습이 나름 괜찮은 모습이라 생각했다. 최소한 작년까지는 그렇게 믿고 살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놓치고 있었던 건 그 결과였다. 삐끗했던 순간의 선택들이, 조금씩 놓쳐왔던 파장이, 내 감정의 잔재들이 나를 잠식하기 시작했고 점차 나를 좀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번 해의 나는 다시 뒤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물론 뒤를 돌아보는 습관이 좋지 않은 것은 알지만,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집요한 의심이 드는 순간부터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다면 또 어땠을까'라는 질문이 뇌리 속에서 헤엄쳤다.



최근 상담 선생님은 내게 물었다.


"지은 씨는 방금 지갑을 잃어버렸다면 어떻게 대처할 거예요?"


나는 답했다.


"상실감보다도 후회하는 감정 때문에 더욱 괴로울 것 같아요. 지갑을 잃어버리기 직전에 10만 원을 인출해서 넣어놨다면, 그건 돌아오지 못하는 돈이잖아요. 저는 아마 밤새 그 10만 원으로 뭘 할 수 있었는지 시달릴 거예요. "


그 말을 하고 보니, 내가 현재 인생을 어떤 방식으로 살고 있는지 깨닫게 됐다. 나쁜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선택할 수 없는 선택지들만 바라보며 나 자신을 상처 주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애를 써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시간인데, 난 불가한 것들에 매달리며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을 낭비하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진실을 깨닫고 한층 시무룩해진 내 표정을 본 선생님은 말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에요. 지갑이 낡고, 손때가 묻어서 익숙하게 느껴져서 힘들겠지만 잃어버린 지갑이 가치가 있을까요? 예쁘고 새로운 지갑을 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제가 이때까지 봐온 지은 씨에게는 충분히, 새롭고 예쁜 지갑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안다. 시간은 거역할 수 없고, 우리는 매 순간 후회를 하며 살아가겠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선생님의 말을 따라보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분명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순간이 올 거라고, 최악의 선택은 피했으니 그나마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 아니겠냐는 안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 글은 인스타그램 @jeanbeherenow 에도 동시 게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