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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불행은 예고 없이 평등하다

젊은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때

by 정지은 Jean

이번 달 너무 많은, 젊은 사람들을 곁에서 떠나 보냈다. 이전에도 이런 경우는 있었으나 이번 달 처럼 빈도가 잦은 적은 없었다.


추석 연휴 당일에 친구가 하늘 나라로 떠났고, 그리고 몇일 전에는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간지 몇일 안 된 내 가족이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바쁘다는 핑계로 최대한 외면하고 싶었던 감정이 켜켜이 쌓이다 결국 글을 쓴다. 내 업이 그렇듯 글을 쓰는 것만이 누군가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유일한 방식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렇게라도 내 안에 소용돌이치는 감정이 조금이나마 소강되었으면 한다.


이번달 내내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단순했다. 사람들의 시선 앞에서 울지 않으려 했고, 최대한 감정을 찍어 눌렀다. 장례식으로 달려가던 친구의 차 안에서도 서로 농담을 하며 하하호호 웃었고 내 가족의 젊은 영정 사진을 보았을 때도 평소와 같이 웃음기 섞인 인사를 건넸다.


그러는 동안 순간 순간, '고작 감정을 가진 사람인 주제에 죽음에 대해 어찌 이리 담담하고 초연할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이 고민했었다. 가끔은 싸이코패스가 아닐까, 혹은 슬픔을 느끼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가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그렇게 수많은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나는 최근 이전의 내가 겪어보지 못한 불행의 터널을 지나왔었다. 몸과 마음이 멍들고, 영양실조로 응급실에 실려갔을 정도로 쇠약해져만 갔다. 당시 우울증 약을 몇달간 복용하며 버텨낸 후 내게 남은 유일한 교훈은 하나였다. 죽음과 불행은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것, 그래서 예고없이 찾아와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었다.


당시 한참 마음을 치유하려 정신과 상담을 받았을 때 선생님과 나눴던 대화 중 가장 크게 공감을 나눴던 시간이 있었다. 그때 선생님은 내게 물었다.


"지은씨는 지갑을 잃어버리면 보통 어떻게 행동해요?"

"저는 만약 그 지갑 안에 현금 10만원이 있었다면 밤새 그 10만원으로 뭘 할 수 있었을까에 대해 고민하면서 끙끙 앓아요. 지갑을 잃어버린 사실도 그렇지만, 그 지갑 안에 있었던 것들로 무엇을 더 할 수 있었을까를 계속 되돌아보고 후회하는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 나는 인생을 항상 그런 방식으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작년까지, 나는 항상 젊은 죽음을 대하며, 영정 사진이 되어버린 누군가의 취업 사진을 보며.


그가 이때까지 살아있었다면 어땠을까. 내가 조금 더 빨리 연락해봤으면 어땠을까 따위의 고민들만 하고 있었다. 후회, 죄책감으로 얼룩진 채로 많은 시간을 지냈다.




그래서 나는 이번 달,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을 추모했다. 죄책감으로 인해 과거를 되돌아보며 자책하는 것 대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을 놓아두고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첫번째로 기억하는 것이었다. 잊지 않는 것. 그 아이가 내 친구였음을, 누군가가 나의 가족이었음을 소중히 기억하는 것이다.


장례식을 나선 후, 친구들과 오랜만에 술을 마시러 갔다. 우리는 모두 울지 않았고, 서로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기억하며 웃고 떠들었다. 그리고 발인이 끝난 후 어머님께 그 친구가 어떤 색깔로 빛나고 있었던 아이었는지 장문의 문자를 남겼다.


가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무엇이 필요한지 알았고 남은 가족들의 곁을 지켰다. 시간을 내어 조금 더 남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었고 해줄 수 있는 것이라면 도왔다.




어떤 드라마에서 모든 인간은 시한부라는 말이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고 안타까운 죽음들이 우리의 어깨를 무겁게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무게를 덜기 위한 건 죄책감 같은 것이 아니라는 걸. 그들을 기억하고, 잊지 않는다면 그걸로 되었다는 것. 그들에게 소중했던 이들의 곁을 지키고 잘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나의 최선이라는 것을.


그러니 오늘도 조금만 슬퍼하기로 했다. 그럼 언젠가 다시 그들을 만났을 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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