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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잘 살 거야

by 정지은 Jean

12월 31일만 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나는 겨울이 싫다. 사람들이 "겨울이 왜 싫어요"라고 물을 때마다 "추위를 많이 타서요"라는 하나의 사실을 말하긴 했지만. 내게 겨울은 매해 누군가를 항상 떠나보냈던 계절이었기에 더욱 싫었다.

단순히 죽음이라는 사실보단 내가 기억하는 가장 최근의 모습이 영정 사진에 담겼단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유년 시절, 대학 시절 그대로의 사진이었다. 조금은 더 늙고, 웃는 입모양도 바뀌었으면 좋았을 텐데. 지난달도 마찬가지였다.

7년 전 12월 31일, 누군가의 젊은 죽음을 목도한 첫 순간에는 "저 사람의 몫만큼 더 살아야지"라는 기고만장한 생각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그 다짐이 얼마나 덧없고 실없는 것인지를 알아차렸다. 그 시간까지 살면 뭐가 달라지며, 애초에 내가 그 사람의 시간을 얻어서 살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여태껏 계속 뒤만 바라보며 살았다. 내가 지난 것 중에 놓친 것은 없는지, 주위 사람들은 과연 행복한지. 나는 잘 살아온 건지. 나도 결국 이러다 말라비틀어지는 건 아닌지.

그러나 이번 겨울은 달랐다. 최근 한 가지 달라진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떠난 이들을 찾아갔을 때 이전과 달리 나는 더 이상 이야깃거리를 떠올리지 못했다. 지금의 일상에서 재밌거나 놀랍거나 새로운 일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좀 놓고 싶어 졌다. 이기적이라고 생각할지언정, 이젠 좀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그러니 처음 떠나보낸 이보다 한참 나이가 많아진 지금에서야 말한다. "그쪽 몫 말고, 그냥 난 내 몫을 살 거야. 차고 넘칠 만큼, 내 삶을 즐기며 살 거야"라고. 이제 그 정도면 새해를 맞이하는 다짐으로서는 충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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