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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깎는 사람을 곁에 둘 필요 없는 이유

지인을 가장한 자존감 굴삭기들

by 정지은 Jean


가끔 당혹스러운 말을 들을 때가 있다. 주로 언뜻 보이는 단면만으로 내 삶이 어떠할 것이라 판단하거나, 나를 일방적으로 깎아내리는 경우다.


최근 들어 가장 마음에 비수처럼 날아온 말은 " 남자 잘 홀리잖아"와 " 좋게 좋은 직장 들어갔잖아"였다.


선을 제대로 넘은 말들에 잠시 충격으로 멍해지다가도 한편으론 어이가 없었다.


'능력 좋고 매력 넘치는 사람이 다수에게 구애받는 당연한 현상'을 저렇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신기했기 때문이다.




자존감이라는 존재는 불공평하다. 자존감을 깎을 수 있는 건 여러 사람인데 그것을 방어하고 일으키는 건 오로지 자기 자신의 몫이다.


게다가 지인을 가장한 자존감 굴삭기들은 인생의 함정과도 같아서 알아차리기 꽤 힘들다. 그들은 항상 "너를 위해서 말하는 거야", " 아니면 누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겠냐"는 말로 자신의 비열한 의도를 포장한다. 오히려 대놓고 비난하는 것보다 저급한 짓이다.


그렇게 그들은 무례한 말들을 뱉을 권리를 얻은 것 마냥 상대방에게 휘두른다. 마치 그것이 배려이자 충실한 조언인 것처럼 말이다.


"너 자신에 대해 진짜 그렇게 생각해?"

최근 정말 날 위하는 이가 해준 말이 떠오른다. 그는 내게 자신을 판단하는 건 오로지 자신밖에 없다고 말했다. 타인이 하는 말에 휘둘려 자신마저 그렇게 믿어버리면, 그건 자신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라고 자신을 믿고 사랑해주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자신이 가장 먼저여야 한다고.


맞는 말을 오랜만에 듣고 나니 더 이상 나 자신에게 미안한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지인이라는 사실을 무기로 무례를 범하는 이들의 언행을 웃고 넘기고 싶지 않았다. 나 자신은 있는 그대로 사랑받아야 할 존재지, 잘못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에 본인이 원하지 않는 판단은 무례일 뿐이다. 그러니 친구를 가장하여 인생의 함정처럼 숨어있는 이들에게 영화 '삼진 그룹 영어 토익반'에 나온 이솜의 대사를 빌려 말해주고 싶을 뿐이다.


"나를 보지 말고 너를 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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