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세 부리지 말아주세요.

혼자 하는 일이 아니잖아요.

by 정지은 Jean



초등학교 시절의 난 부모님의 직업 때문에 여러번의 전학을 감행해야 했었다. 어린 마음에 전학이란 것이 원망스러울 법도 했지만 내겐 그렇지 않았다. 잦은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항상 먼저 다가와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적응의 바탕엔 항상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전학을 갈 때마다, 선생님의 간단한 소개가 끝나면 내 책상엔 항상 아이들이 몰려왔다. 이름은 무엇인지, 어디서 왜 전학을 왔는지 등의 질문들을 끊임없이 쏟아내던 아이들은 학교 구경을 시켜주거나 급식을 같이 먹는 등의 호의를 보여줬다.


이런 어린시절의 영향이였을까. 나는 사람들의 본성엔 친절함이 내재되어 있다고, 그러기에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는 일은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 또한 사회에 나가 다른 이에게 내가 받았던 것과 같은 도움을 돌려줄 것이라 굳게 다짐했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 들어오게 된 회사란 곳은, 내 어릴 시절의 교실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tvN 미생, 회사 생활 초반에 텃세를 당하는 장그래



신입에 대한 텃세. 내가 회사생활이란 책의 표지부터 맞이했던 시련이다. 주 5일 혹은 6-7일 시달려야 하는 일 안에서, 내가 살아가야 할 새로운 일상 안에서 이 문제는 점점 심각한 형태로 내게 자리잡았다.


내가 도대체 뭘 잘못한걸까?

회사 선배들도, 다른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까지... 신입이 텃세를 겪는 건 당연한거라고 했다. 누구나 다들 겪는 일이니 버텨야 한다. 버티다가 좀 지나면 편해진다. 그러니 그 전까진 까라면 까는 예스맨이 되어야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거의 캔디나 다름없었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아야 하는 신입, 말단사원이란 존재는. 주위 사람들도, 그리고 내 자신도 텃세는 마치 필요악인 것처럼 합리화했다.


...텃세는 그저 선배들에게 내 사교성과 끈기를 인정받는 하나의 관문일 뿐이야. 여긴 회사니까, 일하러 오는 거지. 친구 만드려고 오는 거 아니야. 이해관계로 서로 묶인 사람들이니까 정 없이 구는 게 당연한거야...


그렇게 신입이였던 내게 회사란 다니는 것이 아닌, 버티는 것이 되어야만 했다.



tvN 미생,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오히려 '일'을 하기 위해 텃세는 불필요한 것이었다.


많은 이유들 중 그 첫번째는 효율성이였다. 텃세로 인해 느려지는 인수인계의 속도는 곧 부서 전체의 효율성 문제로 이어진다. 텃세 때문에 업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신입 직원이 실수를 하게 되고, 그것을 수습하게 되는 것에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또한 지속되는 텃세는 직원의 지속적인 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하며, 그런 회사 분위기는 직원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회사 전체의 입장만을 생각했을 때의 이유다. 내가 진짜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한 제일 큰 이유는 개인으로써 느끼는 회사 안의 소속감에 대한 것이었다.



tvN 미생, 상사에게 모욕적인 이야기를 듣지만 버티는 장그래


내 인생에서 만났던 첫 상사이자 최악의 상사는 일을 잘하거나 못해서 날 힘들게 했던 사람이 아니였다. 그 상사는 일을 잘 하는 타입이였다. 단 '혼자만 일 하는' 것이 문제였다. 배우고 싶지만 배울 수 없었던 그 상사의 밑에서, 나는 내가 좋아했던 일, 내가 들어오고 싶었던 이 회사 자체에 있던 열정조차 사라지고 있음을 점차 실감했다.



tvN 미생, 직속 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한석율


신입 시절에 나는 미생이란 드라마를 초반까지 보다가 포기했었다. 나는 잠시나마 내가 처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드라마와 영화를 보는 경우가 많았는데, 장그래가 겪는 수모가 너무 현실적이여서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아 보는게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퇴사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포기했던 미생을 용기내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 많은 울분이 섞인 장면들 중, 유일하게 장그래가 부러웠던 장면이 있었다.



tvN 미생, 장그래를 위해 대신 화를 내는 오차장


다른 부서 신입의 실수를 뒤짚어 써서 혼난 장그래는 침울해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아챈 오차장(장그래의 상사)이 술 취한 상태로 잘못한 부서 사람들을 마주치자 '우리 애만 혼났잖아!' 라고 장그래의 편을 들며 윽박지른다. 자신에게 무뚝뚝하기만 했던 오차장의 행동에 감동받은 장그래는 집에 돌아와서 '우리 애라고 했다' 라고 웃으며 되뇌인다.



tvN 미생. 다른 부서의 잘못을 뒤짚어써 혼난 장그래를 우리 애라고 했다 라며 집에 와서 우는 장면



어딘가에 소속될 수 있다는 것의 의미. 이것 하나만으로도 텃세에 대한 불필요성은 충분히 증명된다. 사람은 저마다 어딘가에 속하고, 한명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그리고 그 울타리 안에 있음에 안정감을 느끼고 행복을 느낀다. 내게 있어 최고의 회사는 연봉을 많이 주거나, 규모가 크고 평판이 높거나 혹은 좋은 위치에 있는 회사가 아니다.


정말로 '함께 일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회사, 그래서 개인에게 진정한 소속감을 주는 회사가 지금 내겐 최고의 회사다. 그러기에 이젠 회사에선 텃세가 없어졌으면 한다. 텃세는 필요 없는 것이니까. 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