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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은 Jean Sep 24. 2019

괜찮다고 했지만 괜찮지 않았나봐

견디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며칠 전 새벽, 결국 노트북 모니터 앞에서 눈물이 터져버렸다. 쉴 새 없이 마주하는 삶의 변곡점에 지쳤고 이 난장판 속에서도 지금 해야만 하는 일들에 파묻혀있는 내 신세가 마냥 서러워졌기 때문이다.


마음이 아팠다. 이것이 내 20대의 마지막 모습이 될까봐. 그래서 후배에게 '내 20대는 너무 힘들기만 했어서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아'라고 말하는 또 한 명의 선배가 될까봐. 그렇게 참고 있던 감정의 수도꼭지를 틀어버리자 마자 터져 나온 서러움의 밀물에 나는 이내 곧 잠식당했다.


나 요즘 불행한 것 같아


'불행하다'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 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단순히 '싫다'라는 표현과 '혐오한다'라는 표현의 무게가 다른 것처럼. 한창 마음이 바스러지고 있었던 시기에도 '불행하다'라는 말은 현재의 내 상황을 설명하기엔 극단적인 말이 아닐까도 생각했다. 굳이 나의 심증을 따지자면 '좀 힘들지만 이겨낼 수 있는' 정도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가족이나 선배들의 말처럼, 남들도 살아가기 위해 견디는 딱 그 정도의 무게는 견디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진작 바라봤어야 했던 현실은 그런 것이 전혀 아니었다. 단지 행복하지 않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어 버리면 그게 사실이 되어버릴까 봐 무서웠을 뿐. 행복의 반대말이 반드시 불행 일리는 없다고, 살만한 인생이라 자위했지만 이미  불행은 오래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괜찮지 않았나 봐

향하고자 굳게 마음먹었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 타격을 받은 건강과 마음, 그리고 내 주위의 관계들까지. 모두 내 것이지만 무엇 하나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현실은 언제 무너져도 놀랍지 않을 만큼 나약했다. 특히 누군가에게 전하려는 메시지가 꺾이고 내 의지가 아닌 가치관들이 현실이 되는 것을 목도했던 시간들은 '기자로서의 시간들이 과연 의미가 있었는가'하는 본질적인 질문까지 나 자신을 몰아붙였다.  


그렇게 밥 냄새 없는 집에서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이 괴로웠다. 어른들이 말하는 20대의 열정과 의지 같은 건 너무나도 쉽게 갉아먹히는 존재였고, 용기란 건 본디 일회용짜리 감정인지라 더 이상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바에 도달할 반복적인 원동력이  순 없었다.





인생에 숨어있는 구렁텅이에 빠질 때마다 실감하는 사실이지만, 이런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이 가장 어렵다. 계속해서 떠오르는 불안 속에서는 남보단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편이 쉽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노트북 앞에서 눈물을 쏟아내고 있던 차,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 액정을 확인하최근 내가 겪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에 걱정이 되어 전화한 지인이었다. 애써 울음을 닦아낸 채로 그에게 물었다.


"괜찮아지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러자 그는 대답했다.


"괜찮아지려면,

견디는 게 아니라

괜찮아질 만한 일을 해야죠."




그의 말이 맞았다. 견디는 방식으론 사람은 절대 괜찮아질 수 없다. 견딘다는 건 그저 눈 앞에 쓰레기를 치우는 대신, 그 냄새에 내 후각이 익숙해지기까지 기다리는 행위다. 근원이 해결되지 않으면 그로 인한 고통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버티면 버틸수록 그 시간만큼 당사자는 괴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화를 끊은 다음 날, 나는 그의 조언을 따라 이때까지 선택했던 오답 대신 그가 내민 정답으로 나아가 보았다.


견디지 않기. 괜찮지 않은 것에 매달리지 않기. 아끼는 사람들을 만나 마음껏 웃고, 대화하고, 사랑을 나누기. 그렇게 충만한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내가 느꼈던 감정을 글로 쓰기.


그러니, 놀랍게도. 내가 그토록 거대하다고 믿었던 고통의 몸집이 어느 정도는 줄어들었고, 혼란을 야기하는 것과 그에 휘말리지 않으며 중심축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들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제서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과 그들이 건네 왔던 온기들이 보였다.



삶은 언제나 고난을 준다. 그리고 가끔은, 출구 따위 없는 미로 속에 갇힌 듯 이 순간을 견뎌내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지라 믿게 되는 순간도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때일수록 더욱, 우리의 '괜찮지 않음'에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물론 이렇게 글을 쓰는 나 자신도 아직 그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마냥 쉽지는 않다. 하지만 앞으로의 삶에서 실천하기로 굳게 마음먹은 몇 가지는 있다.


나 자신에게 종종 괜찮냐고 물어봐 주기. "그 순간에 옳고 그르냐"가 아닌, "최선을 다 했느냐"로 질문의 방향을 바꾸기.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혼자라고 생각되더라도 혼자 견디지는 말기. 이것은 이때까지 가장 배려하지 못했던 나 자신과의 가장 큰 약속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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