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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은 Jean Mar 31. 2019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누구를 위한 일일까



누군가를 미워할 조짐이 보일 때마다 내 마음속에 피어난 미움의 싹을 조져버리려고 안간힘을 쓴다. 애초에 남을 미워하는 일이란 자신을 더 괴롭게 하는 일, 결국 자신만 손해인 일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때까지의 내 인생에서 미워했던 사람은 딱 두 명이었다. 아니, 겨우 두 명이라고 말하는 게 옳은 표현이겠다. 짧은 인생이지만 여기까지쯤 살아보니 수십 년의 인생에서  아직도 미운 사람이 두 명 정도라는 건 꽤 잘 살았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세상은 넓고 미워할 또라이들은 수두룩 빽빽이다. 또라이 용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그래서 최대한 긍정적으로 '새로운 또라이보단 익숙한 또라이가 낫지' 라는 생각을 하며 자위하려고 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고. 다들 그렇게 또라이가 가득한 세상에서 알아서 잘 대처하며 살아간다고.



Be kind, Stay humble.

영국에 있을 때 나의 인생 동료가 항상 했던 말이었다. 남들에게 친절하고 항상 겸손하라고. 그러면 웬만한 일들은 다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된다고. 나는 그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긍정적이고 친절하며 겸손하기까지 한 사람. 나 또한 그렇듯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 미워지는 사람의 최대한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하고 미움의 크기만큼 더 친절하게 대했다.


그런데 정말 간혹, 이런 친절이나 행동들이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걸 볼 때가 있는데 그런 때가 바로 내 미움이 결국 싹을 맺는 순간이다. 그렇게 내 미운 사람 리스트에 적힌 이름이 두 개에서, 이젠 세 개가 되어버렸다.


감정이란 건, 이렇게 한 번 품으면 절대 잊히지 않는다. 마치 하나의 기억처럼 사람의 성향에 따라 두고두고 생각나기도 한다. 그래, 여기서 두고두고 기억하는 사람은 나다. 평소에도 생각이 많아서 생각 좀 그만하라는 이야기를 듣는 판국에, 이런 미움까지 더해지면 나 같은 인간은 답이 없다. 밥 먹고 자는 시간 빼곤, 어쩌면 밥 먹고 자는 시간에도 미운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정말로 선을 넘은 생각까지 다다라서야 내가 이런 한심한 사람이었나 싶어 다시 생각들을 철회해보지만 다시 그 사람의 얼굴을 마주쳤을 때 그 생각들이 스멀스멀 피어나는 건 어쩔 수 없다. 결국 사고의 결말은 이렇게 끝난다.


아, 저 사람이 정말 많이 불행했으면.

가끔 정말 이 감정을 주체 못 할 때는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 제발 당신 주위의 사람들이 어떤 당신을 쳐다보는지 역지사지 좀 해보고 자신의 행동을 거울을 비춰봐라 있는 힘껏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


지켜보다 못한 지인은 나보고 감정을 흘려보내라고 했다. 하지만 그래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나쁜데 왜 내가 그 감정을 혼자 흩어지게 만들어야 하며, 왜 나만 그 사람은 하지도 않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냐는 말이다. 노력이란 최소한 그 노력에 의해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는, 그 노력이 의미 있어질 수 있는 사람을 위해서 해도 모자란 것인데.



미움이란 참 미운 감정이다. 그 사람이 불행하길 바라는 마음이 무의식적으로 쑥쑥 튀어나오고 가끔은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을 목격할 때마다 자연스레 희열을 느낀다. 남들이 다 미워하니 나도 미워해도 되겠지, 라는 안도감을 경계해봤자 그 편안함은 계속해서 선을 넘는다. 바로 지금 같이.


맞다. 누군가를 미워하다 보면 자신도 그렇게 인류애가 넘치고 마냥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저 티를 내지 않을 뿐 그 속은 그 사람에 비해 더 나을 것 없는 형편없는 인간이라는 생각도 들 때가 있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건 결국 남을 무너뜨리기보단, 나 자신을 무너뜨리는 일이기도 하다.


그 사람을 미워하는 내 자신이 너무 미운 마음에 나 또한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할 때쯤, 한 후배가 내게 말했다. "누나가 생각하는 것만큼 이 세상은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으로 정확히 규정하긴 힘들어. 그러니 나쁜 사람을 욕한다고 해서 자기 자신을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탓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순간의 위로는 되었으나 마음은 여전히 착잡하기만 하다.


코 앞에 있는 미움이지만, 내가 손을 뻗어 움직일 수 있는 것들이 딱히 없다. 그나마 이 미움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어지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종교도 없는 내가 자기 전 침대 위에서 기도해보는 것 뿐이다. " 내일은 제발, 제가 저 사람을 미워할 이유를 더 이상 만들어주지 마세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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