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같은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던 선배 한 명이 만취해서 옆 테이블에 시비를 걸었고, 결국 큰 싸움으로 번진 적이 있었다.
같은 테이블에 우연히 앉아 있었던 내 일행들은 무슨 죄였던 건지. 상대편 일행은 선배를 후드려 패고 이어 나를 비롯한 여자들의 손목을 잡아채서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사태를 말리려다 결국 우리 일행 중 꽤 다친 사람들이 발생했다.
그것뿐이랴, 경찰들의 조사가 끝나고도 인사불성이 된 그 선배를 예의랍시고 집에 무사히 데려다줬지만 돌아가는 길 내내 갖은 진상과 주사, 그리고 타깃이 바뀐 화풀이 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악몽이나 다름없었던 그 긴 새벽이 지나고 며칠 뒤, 그 선배는 사과 대신 아주 뻔뻔한 태도로 사람들을 대했다. 새벽 내내 붙잡혀 있으면서 다치기까지 한 사람들에게 사과는커녕, 자신 혼자 상대편 사람들에게 사과와 합의금을 받은 뒤 입을 싹 닦아 버린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다시 사람들에게 술자리를 권유하는 그를 보며 지인들은 제정신이냐며 혀를 내둘렀다.
솔직히 우린 말리기도 했고 그날 맞은 선배가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가 걱정하던 마음의 백 분의 일도 그 선배는 우릴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사람들을 다시 대하던 그 선배를 보며 참 황당했던 기억이 난다.
이런 상황들은 연애 상담을 해줄 때도 간혹 발생한다. 울고 불고 애인의 인류애 멸종될만한 만행들을 말해놓고선 나중에 지나고 보면 둘은 이미 화해하고 그때 화내고 욕해줬던 나만 이상한 사람으로 남는 경우 말이다.
직업병인진 몰라도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다. 하지만 나의 이런 특성을 이용해 감정 쓰레기통처럼 쓰는 사람을 마주할 때면 강렬한 인맥 다이어트 충동이 끓어오른다.
나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 말이 떨어진 순간 나는 어떤 선을 잘라도 언젠가는 터지고 마는 시한폭탄을 받는 것이나 다름없다. 문장 끝에 물음표가 붙어있다고 해서 내게 대답을 원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미 "네가 뭐라고 하든 애인이랑 만날 거야"라는 답은 정해져 있는데 그냥 내가 말해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되려 묻고 싶다. "내가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까? 모범 답안이 무엇이니?"라고.
내 마음도 마음이다.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 행복하길 진정으로 바라는 마음. 그 모든 마음을 다 쓸모없는 일회용으로 소모할 거면 나는 차라리 그 마음을 쓰지 않는 게 낫겠다. 또한 그런 친구들이 제발 나의 거리를 존중해줬으면 좋겠다. 인간이라면 다른 일에 개입하지 않고 싶어 할 권리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