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기술, 자본, 가치, 자유

대상-a로서의 자본

by 임지성의 생각



어떤 기술이 될 성싶은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면, 기술의 활용 방식은 여러 주체들의 욕구와 의지가 투영되며 점진적으로, 변증법적으로 구체성을 갖추게 된다.


시장 원리가 아무리 기초적인 수준에서 수요-공급의 법칙을 따른다고 할지라도, 여기서 이 수요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소수의 거대 자본가들이다. 오히려 이들의 방향이 중산층의 투기심을 자극해 인위적으로 수요를 증폭시킨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와 의회는 시민 혹은 대중의 의견 분포를 표면상으로라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때 '전략적인 판단'을 위해 자료로 주어지는 여러 시장의 지표들와 국제 정세에 관한 파편적인 정보들 속 여백, 즉 '해석 여지'에 "현실주의", "실용주의", "윤리적 가치" 등 여러 관점이 투사된다. 그리고 여기서 어디까지가 '명분'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를 구별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가치 투사 이전에 그 자료들 자체부터가 이미 이론, 관점, 이익에 오염되어 있기 때문이다.

* "의견 분포"라고 하겠다. 더 이상 "여론"같은 고상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여론은 공론장에서 숙의와 토의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이제 그런 방식의 여론 정치는 눈을 씻고서라도 찾아볼 수 없다.


한번 어떤 기술이 강대국 간의 패권 다툼으로 비화된 이후에는 대적자/경쟁자의 실존과 실천 자체가 모든 가능한 명분들 중 가장 우위를 갖는 "현실"로서 제시되는데, 이는 대적자/경쟁자의 입장에서도 동일하다. 이때부터 기술 담론의 윤리를 논하는 것은 거의 "사치스러운 신념"으로 치부(되어야)한다.* 오로지 '게임 이론'만이 시의성과 실효성을 갖는다.

* 이것이 실리콘밸리 나팔수를 자처하는 알렉스 카프의 <<기술 공화국>> 속 제일 논지이다.


혁신은 시장에 인프라 수준의 대대적 개선을 강요하겠고 낙수 효과 역시 장기적으로 확실할 것이다. 하지만 그 속도와 방향에 관하여 정책적/개인적 수준에서 완충제가 없다면 그 과정은 큰 고통을 수반하는 시간이 될 것이고, 예고된 "낙수 효과" 속에서도 다수는 여전히 종속적인 '소비자 집단'에 머무를 것이다.


누구가 얼마나 큰 수혜를 차지하는가 이외의 그 어떤 명분도 신뢰해서는 안 된다. "몫의 이동" 이외에 모든 것은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해야 한다.


기술 담론에서 낙관론이나 비관론 사이에 어느 편으로 치우치는가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한 얘기도 아니다. 모든 미래학은 미래를 어느 정도 평탄화하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세력의 의지가 더 크고 강력한지, 그들의 방향이 무엇인지일 것이다.


오늘날 시장에 지배자가 없다고 생각하는 시장 무신론자들이야말로 상품물신주의를 고착시키는 진정한 반동분자들이다. 신이 정말 있건 없건 인류는 신화를 통해 문명을 창조해 왔다. 오늘날 가장 강력한 신화는 자본의 신화다. 아무리 돈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떠들더라도 '구조'는 자본을 수단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자본은 모든 가치를 희석하고 지연시키는, 총체적 지배력을 갖춘 목적이다.


생존을 위해 투자를 하든, 노동을 하든, 저축을 하든, 이것 저것 섞어서 전부 다 하든, 방식은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기술 담론에서 어떤 전략이 더 나은지만 중요하게 된 것 나는 매우 불편을 느낀다.


이전보다 나아질 것이 틀림 없다고? 빵 값이야 싸지겠지!


아무리 마르크스 이후로 전개된 마르크스주의가 파시즘으로 전락했더라도, 마르크스주의 이전 마르크스의 존재감은 여전하다. 정치경제가 제도적 장치와 문화적 풍토를 형성하는 방식은 마르크스가 예고한 '필연적 혁명' 효과적으로 억누르는 방식으로 발달해 왔다. 마르크스에게 있어 이 피할 수 없는 혁명이란 어떤 교리의 실천이 아닌, 모순적인 구조 속에서 주체들이 표현하는 존재감이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계급도, 신화도, 이데올로기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사라지지 않기에 무신경해도 된다는 좌절, 그것이 인문학을 학살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인문"학" 뿐 아니라 인문 현상으로서의 주체적인 삶 자체를 죽인다.


어떤 방식으로 삶을 꾸리고 어떤 방식으로 가치를 실천하든, 이데올로기와 신화적 자본의 작동 방식(modus operandi)에 관하여 눈 감지 말아야 한다.


자유의 여신은 응시를 통해 현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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