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훌륭해야 하며, 훌륭함을 왜 변명하게 하는가
어쩌다 잠시 어울리게 된 젊은 여자애들과의 대화 속에서 장교로 임관하는 또래 여자애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읽을 수 있었다.
남자들이야 으레 그렇겠지만, 나는 대화하다보면 군대 이야기를 잘 꺼내는 편이다. 이 여자애들과 나누었던 여군 장교 이야기도 내쪽에서 시작했던 것이다.
이 아이들의 동경심이야 가혹하게 평가할 만한 거리도 아니었기에, 그저 "그래? 너도 지원할 수있어."라며 놀리는 데서 그치고 말았다.
나는 훌륭한 여성 군인들을 여럿 알고 있고, 몇몇의 그렇지 못한 경우 역시 알고 있다. 그렇기에 막연한 동경심과 환상을 가지고 군 간부로 임관하려는 젊은 여인들이 조금 안쓰럽다.
물론 그들도 선배들과 지인들로부터 여러 염려와 조언을 많이 듣고 결정했을 것이다. 게다가 선택에 대한 책임은 결국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폐쇄적인 군 문화와 군 조직에 대한 민간 사회의 저조한 관심도를 생각했을 때, 일부 여성들이 제도적으로 강제되지 않은 군 복무를 낭만으로 대하게 되는 경우는 그다지 자연스럽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알고 있는 훌륭한 여성 군인들은 결코 낭만으로 훌륭해지지 않았다. 그들은 훌륭한 군인으로 존재하기 위해 남성 군인들 이상의 수고와 수모를 극복했을 것이다. 그리고 몇몇의 그다지 존경하기 힘든 이들은 그저 각 부대에서 편안하게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퇴행적인 군 생활을 몸에 익혔을 것이다.
여성 군인들과 남성 군인들을 별도로 지칭하게 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만, 부대에서 여성 군인들만의 문화와 남성 군인들만의 문화가 암묵적으로 구분되는 것은 "현상"이다.
남성 군인들의 경우에도 도태적인 개인과 모범적인 개인이 있어, 결국 사람 by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군대에서 그들의 '성별'은 그들의 도태를 종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 집단의 경우 사정이 다르다.
군 내부에서 여성들만의 문화가 필요 이상의 내용을 포함하는 현상은 단순히 문화적인 지체 현상이 아니다. 이 문화 지체 뒤에는 군대 바깥의 성별 갈등 이외에도 입대/임관 조건과 연관된 제도적인 결함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병사이든 간부이든 군 입대 후 기초적인 교육/훈련을 거쳐 자대 전입하기까지의 과정은 민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일부) 탈수하고 군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소양을 주입하는 "재사회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체력, 사격, 계급 수준에 맞는 임무 위주의 군사학/전술학 지식, 윤리 의식 등 여러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배우고 또 반드시 갖추어야만 한다.
나는 군 교육기관이 이 과정에서 성별을 고려할 때 필요 이상의 것들을 고려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체력 수준이 안 되거나 하는 요소는 군 복무를 위한 재사회화 과정에서 '성별'에 따라 차이를 둘 요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 군 내부에 시대칙오적 이데올로기적 젠더를 허용하는가.
어째서 군인에게 "여성성"을 허용하는가.
왜 입구에서부터 그런 것을 방치하는가.
어째서 성별이 전우애와 결속을 방해하게 하는가.
(진짜 뒤질래?)
여성들은 군대에 병사로 입대하지 않는다. 그들은 현 제도에서 모두 간부로 임관한다. 군 간부 후보생들에게 병사들보다 높은 기준을 기대하는 것이 타협할 만한 내용은 아니다. 나보다 잘하는 부하에게 지시할 수는 있어도, 나는 하지도 못하는 일을 부하에게 지시할 수는 없다. 계급은 권위적인 것이고, 권위는 체제를 통해 강제되더라도 내적 승인을 통해 힘을 얻는다.
하지만 현 제도에서 여성 군인들은 필요 이상의 정체성을 여과하지도 않은 채 군 부대에 적응하도록 허용된다. 외부 문화와 내부 문화를 통해 추력을 받아야 간신히 바뀌는 것이 제도라는 것이고, 정책이라는 것이겠다만, (그래서 "개선"이라며 더디게라도 바뀌어 온 것이 현 주소겠다만... 들여만 보내주면 다냐?) 군 내부에서 이 제도적 결함은 남성 군인들이 여성 군인들에 대하여 위화감을 갖게 한다. 그리고 여성 군인들만의 문화도 필요 이상의 내용을 갖게 하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정말 악순환이다.
군 조직은 전쟁을 준비하는 집단이며, 전쟁을 준비함으로써 전쟁을 억제하는 집단이다. 법을 통해 사적 폭력을 제한하고, 내부에서의 폭력과 외부로부터의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된 것이 바로 경찰과 군대다.
경찰과 군대는 인간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고, 이들 집단에 소속하려는 이들에게 폭력은 함양할 "소양"이어야 한다.* 이를 누구보다 효과적이고 엄격하게 다루되, 필요하다면 상대를 기필코 굴복시켜야 하는, 그런 사명을 지닌다.
* 군인이 함양해야 하는 폭력은 기본적으로 체력과 사격술이다. 이를 합법적으로, 협력적으로 발휘하는 것은 연습하는 것은 군인이라면 평생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현 제도 속에서 여성 군인들은 사실상 아무한테나 져도 된다. 그래도 군 간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타인의 폭력성을 조작할 수 있는 권한을 얼마간 부여받기까지 한다. 아무한테나 질 수 있지만 계급 의식은 있고, 그래서 필요 이상의 기싸움을 해야만 하는, 그런 존재들을 군 내부에 너무도 쉽게 들여보낸다.
결과적으로 남성 군인들은 적합한 소양을 갖추지 못한 여성 군인들을 타자화하게 된다. 훌륭한 여성 군인들은 아무런 기대감도 없는 상태에서 낭중치추식으로 발견되어야 하며, 동시에 타자화된 집단에도 속해야 하는 경계인의 삶을 강요받는다.
누가 죄인인가?
들여보내준 자들인가?
들어온 자들인가?
국방의 의무가 성 차별적으로 부과되는 측면에 관하여 논란이 있어왔지만, 현 시점에서 진지하게 여성들의 보편적인 군복무를 바라는 남성 군인들은 소수일 거라고 생각한다.
문명은 원시적인 방식으로 폭력을 다루어서는 안 되다. 그래서 국가는 국민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국방의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 모병제이든 징병제이든 결국 누군가는 군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기초적 의무를 공평무사하게 설계하지 못한 시점에서 이미 어느 정도 패착은 있다.
하지만 이미 여성 간부 계층이 존재하게 된 상황에서 이들의 현재 문화를 조성하고, 지속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이 제도적 결함은 반드시 조치되어야 한다. 이들은 군에서 특권층도 아니고 소수자도 아니다. 무근거한 특권과 무근거한 질시를 동시에 강요받는 이상한 계층이다. 당최 훌륭한 군인들이 왜 자신들의 훌륭함을 변명해야 하는가. 그리고 나를 처음부터 좋게 봐주지 않는 집단에서 왜 내가 더 큰 노력과 희생을 통해 훌륭해져야 하는가.
그늘 속의 생태.
기생하는 존재들과 희생하는 존재들도 이루어진,
좋아서 그렇게 하는 이들과 어쩌다보니 그렇게 된 이들이 공존하는,
방치된 생태계.
폭력과 전쟁은 모두의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는다.
저 그늘도 우리의 것이다.
훌륭한 이들을 존경하지만,
낭만으로 도전하는 이들의 앞 길을 순진하게 응원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