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뻐큐 신학

존재론적 뻐큐 - 전복적인 인간학

by 임지성의 생각



성서에는 어떤 레짐을 정당화하는 문법과 흔해빠진 레짐에 뻐큐 날리는 문법이 공존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여러 자료들이 절충적이고 편집적인 방식으로 활용되며 발달한 결과로, 당연한 현상.


그렇다면 "참된 종교 정신"은 경전 해석이 도무지 가설적인 수준에 머무를지라도, 정당화 문법보다는 뻐큐 문법을 계승하려는 노력에 가깝지 않을까?


예컨대 모세는 신-인간-동물의 합성물로 묘사되는 고대 신화의 문법에 "구분"을 도입한 최초의 비교신화학자다.


인간의 탈신화화. 인간 위에도, 인간 아래에도 다른 인간을 두지 말자는 뻐큐 문법이다.


이 외에 모세오경 속 여러 "구분 짓기"에서 제2성전 이데올로기 솎아내기란 지난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대립을 다 여기에 넣어도 좋지 않을까 싶지만, 그게 그렇게 중요할까 싶다.)


예수도 마찬가지다.


그는 제2성전 유대교의 반동주의와 메시아 대망론 자살공세 간의 양자택일에 뻐큐를 날렸다.


나는 그가 정결한 인간과 부정한 인간의 구분을 해체하고 모세적인 인간관으로 회귀한 희대의 뻐큐 천재라고 생각한다.


바울도 그렇다.


종교 비평가들은 바울이 예수를 로마적으로 변질시켰다며 궁시렁대지만, 바울의 국제주의 문법이 없었다면 예수 정신은 소수 유대인만의 히피 문화로 전락했을 것이 빤하다.


바울의 국제주의를 제국주의로 뒤집어 읽은 것은 오히려 [ 니케아 공의회 이후의 기독교 ]라고 생각한다. 바울도 예수 정신을 계승한 모범적인 뻐큐 쟁이다.


의외로 모세, 예수, 바울과 가장 닮은 문법을 구사했던 현대인들은 니체나 마르크스같은 이들이다.


이들의 반기독교적 태도는 긴 세월 동안 모세, 예수, 바울의 "전복적 뻐큐"를 거세한 채 전통만을 답습 당대의 기독교에 대한 불만이다.


나는 이 사람들이 다 좋다. ㅗㅗ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막 2:27~38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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