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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성의 생각 Sep 08. 2024

2.2 - ‘의미’의 퇴락과 ‘나’ 없음의 아이러니

‘신’ 없음의 아이러니와 ‘나’ 없음의 아이러니



철학자들이 반응했던 20세기 데카당스와 26살의 임지성이 경험했던 실존의 위기, 그리고 21세기 청년세대의 오춘기 정체성 위기는 나름 서로 닮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가이자 철학자였고, 언론인이기까지 했던 문인 알베르 카뮈의 사례를 생각해 본다.*

* 물론 카뮈가 현상학이나 철학적 해석학에 관한 글을 썼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상학의 후손인 ‘실존철학’에 관하여 나름의 입지를 가진 문인이었다. 여기서 카뮈의 사례를 들먹이는 이유는, 그가 쓴 글들이 나의 ‘신 없음-정체성 위기’에서 출구 같은 역할을 담당해 주었기 때문이다.

카뮈는 동시대에 활동했던 탈근대주의(또는 후기근대주의) 사상가들처럼 시대에 응답하는 글쓰기를 실천했다. 탈근대주의 사상의 주된 논조는, 이성(intelligence)과 기술에 대한 무한한 기대가 전쟁인간성의 말살, 일상의 파괴, 사회와 개인에게 청사진을 제공했던 모든 가치와 이념의 퇴폐 등을 야기했다는 비판이다.


카뮈도 <시지프 신화>에서 ‘부조리’의 개념을 통해 비슷한 의식을 표현했다. 카뮈에 의하면, 눈을 똑바로 뜨고 보면 누구나 그 즉시 부조리의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모든 가치와 의미가 휘발된 세계, 더 이상 살아갈 의미조차 모호한 세계 말이다. 부조리를 발견하지 못하는 의식은 정신 차려야 하는 잠든 정신과 같다. 이런 상황에서 잠에서 깬 의식이 취수 있는 정직한 태도는 삶 자체를 포기하거나 삶에 관한 의미 탐구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허무와 부조리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삶을 위한 새 의미를 창조해 내는 것(무의미에 대한 저항)이다.


비슷한 논조의 주장을 카뮈보다 먼저 강력하게 표현했던 철학자가 있었다. 바로 프리드리히 니체다. 니체는 우리나라에서 故 신해철 가수를 통해 대중적으로 유명해진 측면이 있다. 하지만 니체는 이미 철학계에서 19세기를 대표하는 탈근대주의 철학의 선구자로 획기적인 슈퍼스타였다. 어떻게 보면, 카뮈의 철학과 문학은 니체의 ‘능동적 허무주의’ 사상을 20세기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표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이가 있다면, 니체는 동시대 지성인들을 상대로 서구 유럽 문명의 기독교적 가치가 근대주의 시대정신으로 대체되는 상황 배경으로 했다. 한편 카뮈는 동시대 노동자 계층을 상대로 근대정신의 무참한 실패 결과에 대한 대안을 제공하려 했다.


카뮈의 주제 의식 자체는 동시대 사상가들의 것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독창적이지 않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20세기 실존철학 사례로서 카뮈 문학의 대표성을 인정할 수 있다. 물론 그가 후설이나 하이데거처럼 의미 탐구의 방법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한 것은 아니다.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처럼 벽돌같은 철학책을 펴 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마치 직전 시대에 니체처럼, 허무감에 시달리는 동시대의 고통을 직시하고, 삶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가운데 그 허무를 견뎌내고 삶을 끝까지 살아도 되는 이유를 설득했다.



사진: Unsplash의 Adrien Brunat



나는 신을 잃어버린 신학 전공자이자*, 한국 사회의 기형적인 구조 속에서 큰 MZ세대 구성원으로서, 서구 사회가 니체의 시대에 겪었던 데카당스카뮈의 시대에 겪어야 했던 부조리를 마음 깊이 공감한다. 우리나라는 불리한 여건* 속에서 국제화 및 근대화 시대를 열며 괴로운 운명을 겪어야만 했다. 다행히 그 뒤로 고도의 성장을 거듭해 지금의 풍요를 이룩할 수 있었지만, 그 속에서 성장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게다가 그 성장통은 성장 자체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해, 온갖 사회적 문제로 번져나가며 이제 막 발견되는 중이다.

* 당시 나에게 있어 ‘신’은 ‘의미 있는 모든 것’들을 단 한 단어로 요약하는 주문 같은 말이었다. 고등학교 때 실시했던 진로 탐색 과정과 관련 서적을 읽기 위해 휴학했던 1년을 포함하면, 자그마치 6년 하고도 약 6개월 정도의 시간을 오롯이 ‘신’을 탐구하는 일에 사용했다.

* ‘제국주의가 팽창하던 시기의 강대국들 사이에 끼인 약소국이라는 불리한 여건.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 같지 않은 계층이동, 두 명당 한 명이 안 되는 출산율, 과장된 수명으로 인한 고령화 사회, 해결 안 되는 자살률, 화해할 기미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세대ㆍ성별ㆍ계층 간의 불화, 개인과 사회의 가치체계를 뒤흔드는 저열한 수준의 자본주의 문화 등. 얼마든지 계속 나열할 수 있다. 이제 이 뒤늦은 성장통은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크기로 불어나 있다. 웬만큼 무감각한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 이 사실에 공감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작금의 구조와 실태를 보면, 이 속에서 ‘나’를 찾고 ‘삶의 의미’를 추구한다는 것 자체가 철없는 말 같다. 한국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이 땅 그 어디에라도 발붙이고 사는 것이 막막하게 느껴진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노랫말처럼,* 그저 남들 사는 모습을 힐끗거리며 행여 그 속에 참신한 전략이라도 있을까 뒤적거려 보지만, 발견되는 것은 오로지 ‘흉내 낼 수 없는 올려치기’‘있는 것 없는 것 영혼까지 다 끌어모아 수행하는 단막극’ 있을 뿐, 그 속에 나를 위한 보금자리는 없다.


물론 내 또래 청년들 모두가 나처럼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느낀다. 그리고 청년세대 안에는 나처럼 우리나라를 30년째 낯선 땅으로 느끼며 살고 있을, ‘K-네이티브 이방인’들이 분명 더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 없음 의미의 퇴락에 내 글쓰기의 이유와 목적이 있다. 지금 이곳에 사는 한 사람의 이방인으로서 스스로에게, 또 나의 동시대 이웃들에게, 감히 또 한 명의 카뮈가 되어 질문하며 함께 고뇌하고 싶다.

*SWING(그네), CHOI(초이).


ㆍ진정 의미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 낯선 땅에서 산다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인가?


ㆍ우리가 안달복달하는 문제들이

   우리 삶의 전략을 이토록 전반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이유는,

   정말 그 속에 내포된 고귀한 가치 때문인가?

   그런 가치들이 정말 있기는 한 것일까?

   그 가치들을 우리가 찾을 수는 있을까?


ㆍ우리 삶의 전략은,

   한 번뿐인 삶의 유한성과 무상성을 정직하게 직면함으로써 도출해 낸 결과인가?

   아니면, 그저 도피처나 임시방편으로 수립된 우발적인 계획에 불과한 것인가?


ㆍ대체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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