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는 응시자다
철학자는 응시자다.
이들이 하는 말들은 무척 알아듣기 어렵다.
심지어 과학철학이나 기술철학 같은 '분야를 가진' 메타 이론가들 역시 그러하다.
(과학자들이나 공학자들은 이들이 하는 여러 말을 어렵게 느낄 것이다)
쉽게 할 수도 있는 말을 괜히 어렵게 꼬아서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의 말이 어려운 이유는 '이방인의 말', '응시자의 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외국어여서 어려운 것도 맞는 말이지만)
철학자들은 세계라는 게임을 '참여자'의 시점에서 취급하지 않는다.
이들의 시점은 오히려 '관찰자'의 시점에 가깝다.
(비록 이들의 시점이 '전지적'이는 않지만)
철학자들은 의도적으로 밖에서 보는 자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의 말은 참여자들에게 매우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처럼 들린다.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 추상적이고 심지어 공상적이기까지 한 것도 맞지만)
하지만 철학자들의 표현은 결코 사적이지 않다.
철학은 철저히 참여적이고 공적인 언술이다.
이들의 비참여는 일종의 선택된 가능성으로서의 플레이다.
누군가는 이 게임에 대하여,
"나는 이 ㅈ망겜에 동의하지 않겠다."
와 같은 태도를 취해야 한다.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비참여'를 가능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비참여'란 실제로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가능하더라도 이러한 태도는 유효하다.
'비참여적' 담론은 게임 규칙을 문제시하고 바꾸기 위한 촉매제다.
철학자는 세계를 타자화한다.
심지어 스스로를 타자화한다.
타자화한 "너" 안에 '나'가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모든 타자를 내면화한다.
철학자들의 난해성이 그들의 표현을 '사적인 표현'처럼 오해받게 만들지만,
철학자들에게는 사실 '사적 영역'이라는 것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자들은 사실 '철저히' 사적이기도 하다.
철학자는 게임 자체와 게임을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든 상대를 자신의 상대로 취한다.
(아마 작품화하지 않았거나 못한 경우에도 그러했을 것이다.)
정정당당한 상대가 자신들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그들은 사적인 존재들이다.
그들의 상대가 언제나 2인칭이기에(타자화 한 스스로를 포함하여) 그들은 철저히 공적인 존재들이고,
모든 이들과 대등하다는 점에서 그들은 철저히 사적인 존재들이다.
이들의 난해성은 이러한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들은 전술적 긴장을 포기하지 못하는 군인과도 같다.
이들은 참으로 까다로운 주체들이다.
그들에게도 세상은 까다로운 곳일 것이다.
불쌍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시선을 불쾌하게 여길 수도 있겠으나)
가장 정신 차린 자로 살기 위해서는, 가장 미친 자로 살기 위한 각오가 필요한 법이다.
암튼 나도 이 ㅈ망겜에 무작정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도 불쌍하다.
하지만 이러한 자기 연민은 정당하지 못하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으며,
그래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