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2장 4절

하늘과 땅의 계보

by 임지성의 생각



구조


1:1-2 – 하늘I(물)I이 창조되고 하나님의 영-바람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바다(땅I) 위에서 천지창조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다.


(1) ABC – 하나님의 말씀이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바다(땅I)를 질서와 충만과 빛의 세상으로 바꾸다(창조세계의 무대가 마련되다).

1:3-5 - 첫째 날, 빛과 어둠이 분리되어 낮과 밤이 조성되다.

1:6-8 - 둘째 날, (물)I이 위아래로 분리되어 하늘II가 조성되다.

1:9-13 - 셋째 날, 하늘II 아래의 물(땅)이 모여 육지를 드러내고, 땅II(육지) 위에 식물세계가 조성되다.


(2) A'B'C' – 하나님의 말씀이 창조세계를 생명으로 가득 채우다.

1:14-19 - 넷째 날, 하늘II을 다스리는 해와 달과 별들이 창조되어 땅에 빛을 비추며 시간적 질서를 부여하다.

1:20-23 - 다섯째 날, 바다하늘II이 각각 바다 생물들새들로 가득 차다.

1:24-31 - 여섯째 날, 땅II육지 생물들로 가득 차고, 남녀로 구성된 인간 곧 하늘II와 바다와 땅II의 모든 생물들을 다스릴 하나님(들)의 형상이 창조되다.


2:1-4 - 일곱째 날, 천지창조완결이 선포되고, 안식일 법제정되다.


주의사항


1) ‘복수의 하늘, 땅, 바다’가 등장한다. 1절의 “하늘”과 둘째 날 새롭게 조성된 “하늘”은 명백히 다른 영역이다.

한편 1절의 “땅”과 2절의 “땅”은 동일한 영역이지만, 이는 셋째 날 새롭게 조성된 “땅”과 구별되는 다른 영역이다.

“바다”는 셋째 날 처음 등장하는 것 같지만, 만약 1~2절의 “땅” 곧 “하나님의 영-바람루아흐 엘로힘”이 활공하시던 그 ‘심연’ 을 ‘바다’라고 부를 수도 있고, 둘째 날 “궁창 위의 물”을 ‘바다’라고 부를 수 있다면, “바다” 역시 복수의 영역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2) ‘단수의 엘로힘’과 ‘복수의 엘로힘’이 등장한다. 전자는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후자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하늘 공동체’를 각각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엘로힘이라는 말 자체가 ‘신’을 뜻하는 단수명사 ‘엘로아흐’ 또는 ‘’의 복수형이지만, 성경에서는 단수의 수식/서술어와 결합하여 단수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그러나 복수의 수식/서술어와 결합한 엘로힘은 분명히 복수로(“신들”) 읽어야 한다.


3) “광명체들”이 ‘인격적인 존재들’로 묘사된다. 이는 은유적인 표현(의인화)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러한 묘사가 은유적인 표현일 경우, 이는 단지 광명체들의 역할을 인격적인 활동에 빗대어 설명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묘사가 문자적으로 읽혀야 하는 경우, 천체들에 신성을 부여하던 고대인들의 시선을 반영하는 것이다.

나는 26절의 1인칭 복수 대명사 “우리베짤메 키데무테”가 ‘하나님의 하늘 공동체’를 가리키며, 고대인들은 그들을 이 ‘신성한 천체들’과 동일시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4) 동물과 인간에게 각각 다른 먹거리가 주어졌다. 각각 인간에게는 곡식과 과일이, 육지 생물들에게는 채소가 먹거리로 주어졌다.

여기서 인간과 동물에게 주어진 먹거리는 창세기 2~3장의 ‘선악과 사건’과 창세기 9장의 ‘육식 명령’ 때문에 중요하다.


5) 천지창조가 완결된 직후인 ‘일곱째 날’은, 천지창조의 과정이 전개되던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과는 다른 매우 특별한 날로 묘사된다.

그리고 (1) ‘첫째 날에서 셋째 날’과 (2) ‘넷째 날에서 여섯째 날’은 반복적인 패턴(ABC-A'B'C' 구조)을 보이는데, (1)에서는 ‘지상왕국(하늘II바다II땅II은 모두 첫째 땅I로부터 창조되었다)’ 속 ‘활동영역들과 활동자원들’이 창조되며, (2)에서는 (1)에 대응하는 ‘활동 주체들’이 창조되고, ‘그들의 역할’이 제시된다.


6) 사실상 1장 1절에서 시작된 ‘창조기사’는, 2장 4절의 전반부까지 통째로 읽어야 하는 한 단락을 이룬다.

2장 4절의 “하늘과 땅의 내력톨레도트 하샤마임 베하아레쯔”이라는 표현은, 사실상 1장 1절부터 시작된 <창세기 에피소드 1>의 제목이다. 개역개정보다는 공동번역이 이러한 독법을 잘 반영한다(“하늘과 땅을 지어내신 순서위와 같았다.”).


해석


우리가 이 본문을 읽을 때 특별이 유념해야 하는 점이 있다면, 이 책이 고대인들의 원시적 상식에 맞춘 우주관을 반영한다는 점이다.

이 기사는 결코 현대인들에게나 익숙할 법한, 연대기적인 역사서술이나 과학적인 우주관을 반영하지 않는다.

예컨대, 창세기 1장의 창조순서는 창세기 2장의 것과 일치하지 않는데다가, ‘6일 창조’와 ‘궁창 위의 물’과 같은 그림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천문학적 사실들과 쉽사리 조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사실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창세기를 포함한 모세오경 전체는 처음 그 독자들(혹은 청자들)에게 주어졌을 당시의 관심사를 반영한다.

그들의 관심사는 결코 연대기적 역사나 천체물리학적 이론 따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당시 자신들을 둘러싼 시공간적 지평과 그들의 정체성 및 사명에 대한 설명이었다. 따라서 우리가 창세기 1장의 묘사를 통해 과거 ‘사실’을 재구성하려는 노력(예컨대 우주생성론)을 하면 할수록, 우리는 창세기 1장을 오해하게 된다(즉, 시대착오적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 본문의 요점은 오히려 ‘하나님의 권능’과 ‘인류의 사명’이다.


이 본문의 장르가 ‘계보’라는 사실도 이 점을 잘 설명해준다(“이것이 하늘과 땅의 계보이다.”엘레 톨레도트 하샤마임 베하아레쯔; 창 2:4 사역). ‘계보’는 보통 한 국가의 자연환경적인 조건과 국내정치적/국제정치적인 조건과 종교적 이념 및 제도 등을 설명하는 신화적 장르인데, 주로 신 또는 신들의 관계와 국왕의 혈통을 연결함으로써 그 목적을 이룬다.

<창세기 에피소드 1: 하늘과 땅의 계보> 역시 ‘세상과 인류의 기원과 사명’이라는 주제를 ‘창조주 하나님의 권세와 그분의 지상적 권한대행자 역할’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는데, 이는 온 세상이 ‘하나님의 영과 말씀’으로 조성되었다는 설명과 인류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설명에서 대두된다.


고대인들에게 ‘신의 형상’은 신의 모양을 본떠 만든 구조물이나, 국가의 통치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사실상 이 ‘신 모양의 구조물’은 왕의 외양을 닮은 모습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종교 제도를 통해 정치 제도를 정당화하기 위한 상징적인 장치이기도 했는데, 사람들은 ‘신 모양의 구조물’과 ‘나라의 통치자’를 그들이 상징했던 신의 대리자이자, 심지어는 신의 임재 자체로 여겼다.


성경이 인류를 ‘하나님의 형상’‘하나님의 왕적인 가족’으로 묘사하는 점은 매우 놀라운 데, 이는 다른 고대 신화들이 인류와 그 역할을 노예적인 관점에서 묘사하는 점과 비교했을 때 특히 놀랍다(특히 메소포타미아 신화 <에누마 엘리쉬>에 따르면, 인류와 그 역할이 ‘하급 신들의 노역을 대신하기 위해 창조된 노예들’이다). 왜냐하면 당시로서는 인간과 인간의 삶에 대한 이런 높은 견해를 주장하는 신화가 사실상 전무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창세기 1장(에서 2장 4절 전반부까지)을 읽을 때, 우리 인류와 각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권능(영과 말씀)으로 이루신 천지창조를 본 받아 이 세상을 통치하며, 그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받게 된다(다시 말해, 하나님이 영과 말씀으로 혼돈과 허무와 어둠과 죽음-생명없음을 물리치고 이 세상을 질서와 빛과 생명으로 가득 채우신 것처럼, 우리도 왕노릇하며 이 세상에 현존하는 혼돈과 허무와 어둠과 죽음을 대적하며 이 세상이 질서와 빛과 생명으로 가득할 수 있도록 선한 통치를 베풀어야 한다).

이는 안식일 법의 입법 의도와도 맥을 같이하는 것인데, 이스라엘 민족은 6일 동안은 힘써 일하고 7일째 되는 날 하나님을 위해 휴식을 취함으로써 주기적으로 천지창조하나님의 주권, 그리고 인류의 본래적인 사명을 의식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이념을 예수께서 가르치신 제자도적 기도(“주기도문”)에서도 읽어낼 수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적용


오늘 우리는 죽어서 천국에 가는 일만큼이나 중요한(어쩌면 그 이상으로 중요할 수도 있는), 천국이 우리 삶을 통해 오는 일을 마음에 품고 있는가?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세상에서 하나님 닮은 존재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다.


사람답게 살자.

또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자.


세상을 좋은 곳으로 바꾸자.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천상 공동체와 함께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하나님의 지상 공동체다.




창세기 2장 4절~3장 -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존재

매거진의 이전글총신대학교를 졸업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