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신대학교를 졸업하며

2020년 어느 날, 신앙의 단말마에 대한 추억

by 임지성의 생각



이 글은 내가 대한예수교 장로회 교단 산하의 신학교인, 총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며 작성한 일종의 주석이다.


작성 당시 원래 계획은 창세기로 시작하여 계시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었으나, 창세기 5장을 끝으로 이 계획의 지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창세기 5장에 관한 해석을 끝으로 나는 곧장 니체, 하이데거, 사르트르, 카뮈의 품으로 도망쳤다.


누군가는 그리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그가 나였을 수도 없으리라.




각 단원의 구성은 아래와 같다.


'구조': 맥이 통하는 의미 단위를 기준으로 분절하여 텍스트를 요약하였다.


'주의사항': 시대착오적인 해석을 방지할 수 있도록 '선이해의 격차'를 지목하였으며, 번역본이 표현하지 못하는 원어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였다.

* 색상이 다르게 표기된 말들은 히브리어 음역이거나 칠십인역의 헬라어 음역이다.


'해석'과 '적용': 성서의 문학적인 표현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했을 메시지를 재현하고, 그것이 삶의 실천과 맞닿는 방식을 제안하였다.


창세기 1장~2장 4절 - 하늘과 땅의 계보


창세기 2장 4절~3장 -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존재


보론 - 성경이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가족윤리'를 정당화하는 문제에 관하여


창세기 4장 - 사람의 본분


창세기 5장 - 아담의 계보: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신앙의 단말마 - 반사실적 여행의 시작


'주의사항' 부분의 논증적인 문체가 지루한 독자라면, 이 부분은 뛰어넘고 '해석'과 '적용' 부분을 바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해석'과 '적용'이 의아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한글 번역본으로도 충분하니 본문과 나의 '구조', '주의사항'을 비교하며 논지를 추적한 뒤 온당한 방식으로 비평해주면 나 역시 한 수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나은 해석이 제기되더라도 내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탈피한 것은 아마 비가역적인 사건일 것이다. 그저 이렇게도 저렇게도 읽을 수 있겠거니 할 뿐. 아마 라틴어나 독일어를 학습하는 용도를 제외하면 내가 다시 성경을 펴 읽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섬세한 감각을 지닌 독자라면, 이 주석을 작성하며 내가 겪었을 사상적인 지각 변동을 감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교리적인 해석과 다를 수밖에 없는 내용을 발견하는 지점에서 그러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내가 겪었을 지각 변동에 동조하여 교리적 편견을 거세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전통적인 칼뱅주의자가 아니다.

현재 나의 신학적 입장은 '불가지론'에 가깝다.

이것을 미리 밝혀둔다.


이 글은 한 신앙인의 '유언'과도 같은 글이다.

내용으로 보아도, 결과로 보아도 여러모로 시뻘건 글이다.

내 안에서 죽은 정체성의 단말마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하였듯,

누군가는 간단히 그리 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