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공감받고 싶을 뿐이야
친한 친구가 눈을 심하게 다친 적이 있다. 앞이 뿌옇게 보이는 상황에서 안과에서도 ‘시력이 완전히 회복될지는 경과를 지켜봐야 안다’라는 답변이 돌아온 상황. 청천벽력 같은 뉴스였다. 다시 시력이 회복되지 않을까 봐 무섭다고 하는 그 친구에게 내가 해준 말이라고는 “나도 이런이런 사고를 당해봤는데 결국 다 낫더라, 내 친구들도 비슷한 상처가 났었는데 지금은 멀쩡하더라, 그러니까 너도 괜찮아질 거다” 하는 식의 말들이었다. 내 딴에는 위로를 한답시고 한 말이었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나 보다. 고민하던 친구의 묵직한 한 마디.
네가 그렇게 말해주는 의도는 고마운데, 그런 말들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아.
그 말을 듣고 뜨끔했다. 정작 나도 그런 말들로 위로를 받은 기억밖에 없어서, 그 외의 별다른 위로의 방법을 몰랐다는 게 내 변명이라면 변명이었다. 그 친구의 고통은 그 친구만의 것이다. 내가 의사도 아니고, 그 친구의 상태를 100% 알거나 예측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런 상태에서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은 너무 무책임한 말이었다.
“다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은 오히려 지금 느끼는 감정이 괜찮지 않은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금방 괜찮아질 테니까 그만 걱정해", "빨리 털어내, 그 감정은 나도 불편하게 만드니까", "그런 감정을 느끼는 건 나약한 거고 안 좋은 거니까 이쯤 하고 그만 얘기해".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이다.
우리가 무섭고, 불안하고, 우울하고, 힘든 감정을 꺼내놓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그저 내가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그렇게 느껴도 괜찮다고 토닥여 줄 사람이다.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결 방안이 보이지 않더라도 곁에서 이렇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내가 느끼는 이런 감정들까지도 이해해 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위안을 받고는 한다. 공감이라는 건, “나도 겪어봤고, 그래서 나도 안다”가 아니라 “네가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구나, 그건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당연한 감정이고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천천히 이야기해 봐, 내가 들어줄게” 쪽에 다 가까운 것 같다.
그 친구에게 필요했던 것도, 자신이 느끼는 두려움과 걱정이 당연한 감정이라는 걸 이해해 주고, 설령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곁에서 함께 그 과정을 지켜봐 주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힘들었을 텐데도 나에게 자신이 원하는 공감이 어떤 건지 명확한 말로 설명해 준 친구에게 참 감사하고 또 미안한 기억이 있다.
때로는 어떤 말로도 위로를 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있다. 그럴 때는 그저, 그 비어있는 말풍선을 억지로 채우려 하기보다는, 가만히 꼭 안아주며 너의 곁에 내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