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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하게 Oct 22. 2023

신입사원 욕을 하고 다니는 사수

자기 얼굴에 침 뱉기인데도 그러네

| 뒷담화의 시초와 특성


뒷담화 : 남을 그 사람이 모르게 헐뜯는 행위, 또한 그러한 말.


여중을 나왔다. 내가 경험한 여초 집단에서 가장 큰 갈등거리는 역시나 뒷담화로부터 시작되었다. 말은 와전되고 생겨나고 증폭되어 갈등을 굴리고 또 키웠다. 패싸움을 하게 만들거나, 친구 사이를 갈라놓거나, 오해를 만들었다. 학창 시절 뒷담화에 휘말려 미묘한 따돌림을 당하거나 친구를 잃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뒷담화 근처에는 최대한 얼씬도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학습했다.


뒷담화는 몸에 해로운 유통기한 지난 정크푸드 같은 느낌이다. 뒷담화를 나누다 보면 자그마한 '내 편'이 생기면서 소속감과 공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뒷담화는 결국 안 좋은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찜찜함과 죄책감이 자리 잡는다. 그리고 그 감각이 결국 안에서부터든, 밖에서부터든, 자신을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한다. 


어찌 됐건 뒷담화는 사회생활 속에서 피할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부분이다. 뒷담화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크게는 '너무 싫어하는 상대방을 깎아내리기 위해서' vs '내집단을 형성하기 위해서 공공의 적이 필요할 때' vs '그냥 할만한 다른 얘기가 없어서'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이때 개개인의 대처가 뒷담화를 더 부풀리느냐 축소시키느냐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 1. 너무 싫어하는 상대방을 깎아내리기


정말 상대방을 싫어해서 그 마음이 입 밖으로 나오는 경우인데, 이때는 '내가 그 사람을 왜 싫어하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많은 경우, 그 사람이 가진 것에 질투가 나서,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그 사람이 갖고 있어서 그런 감정을 느낄 때가 많다.


고등학생 시절 정말 밝고, 영어도 잘하고,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친한 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 친구를 볼 때마다 뭔가 마음에 쿡쿡 불편한 감정이 솟아올랐고, 당시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었지만 괜히 그 친구가 미웠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그 감정이 질투라는 걸 알았다.


당시에는 그 친구가 친절하게 굴면 '착한 척하네', 영어를 유창하게 하면 '괜히 발음 굴리면서 자랑하네'하면서 사사건건 모든 게 그렇게 비뚤게 보일 수가 없다. 그런데 그게 질투라는 걸 알아차리고 나니, 모든 관심을 나에게로 돌려 나의 결핍을 채우는 것에 에너지를 쏟기 시작할 수 있다.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사사건건 간섭하고 지적하기에는 내 인생과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학창 시절, 뒷담화하는 친구를 대처하는 방법으로 '그럴수록 그런 말들은 무시하고 잘 지내는 것'이 최고의 복수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이 맞다. 남들이 뭐라고 말하든, 어차피 세상 사람들의 의견은 다양하고 다를 수밖에 없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도 없고, 모두와 친하게 지낼 필요도, 그들의 기호와 피드백에 맞출 필요도 없다. 있는 모습 그대로를 좋아해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은 어디에든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애먼 사람한테 잘 보이려 감정 소모 하기보다는, 내 사람들에게 잘하자.




| 2. 내집단 형성을 위한 공공의 적 만들기


이전에 함께 입사한 동기가 겪은 이야기다. 입사 후 직무교육 없이 바로 업무에 투입돼서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사수랍시고 배정된 사람이 제대로 알려주지는 못할 망정 '멍청한 애가 들어왔다'며 아주 소문을 내고 다녔단다. 그 친구는 이미 업무를 익히기 위해 12시가 넘어 퇴근하기 일쑤였는데, 사수가 자기 욕을 하고 다닌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자 제대로 멘붕이 온 듯 보였다.


사수가 부사수를 욕하고 다니는 건 밖에서 보면 이렇게 들린다.


1) "난 잘 알려줬는데, 쟤가 못하는 거야"

"나는 헷갈리는 것 없이 완벽하고 똑 부러지게 가르쳤는데, 쟤가 멍청하고 일머리가 없어서 바로 알아듣지도 못하고 헤매는 거야. 난 잘못 없어" 하고 발을 쏙 빼는 느낌. 이런 식의 욕은 일을 넘어, 그 사람 인간성 자체에 대한 까내림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부사수는 지금 그 일을 처음 배우는 것 아닙니까. 남의 실수나 미숙함을 포용할 여유가 없는 사람 같아 보인다.


2) "나 지금 스트레스 한도초과니까, 건드리지 마라"

 "나 이미 일이 산더미인데 신입까지 교육시키라고? 스트레스받는데 윗사람한테 싫은 소리는 못하겠고, 그냥 신입이 알아서 해줬으면 좋겠는데, 빨리빨리 못 따라오네. 신입한테 풀어야지."

새로운 직원에게 업무를 인계해 주는 일은, 어쩔 수 없이 평소보다 더 많이 하게 된다. 자신의 일을 해야 할 시간에 부사수를 교육시켜야 하고, 부사수가 실수를 하면 수습해야 하기 때문에 야근을 할 수도 있다. 애꿎은 부사수가 자신의 짐이 된 것 같은 모양새니 예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 결국에는, 자기 스트레스도 스스로 해소하지 못하고 힘없는 부사수나 괴롭히는 못된 사람처럼 보인다. 인수인계와 교육으로 인해 업무가 과중하다고 느껴지면 상사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아서 팀 내에서 조율을 할 일이다. 


그 사수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또 다를 수 있겠지만, 신입이 업무가 서툰 건 당연한 것일 텐데 숙련될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도움을 주진 못할 망정 부사수를 욕하고 다니는 그 사람이 참 자기 얼굴에 침 뱉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직에 새로 들어간 사람은 상대적으로 먹잇감이 되기 쉽다.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갔을 때의 그 긴장감도, 결국 어떤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이 뭉친 감정일 테다. 그러니까 오히려 더, 새로운 사람에게 잘해줘야 되는 거다.




| 3. 별다른 할 말이 없을 때


뒷담화는 시간 아까운 짓임이 분명하다. 이쯤 되면 습관성 뒷담화의 경우다.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을 더 알아갈 수 있는 속 깊은 대화주제가 널려있는데도 남의 뒷담화를 하는 것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쓰기로 선택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낭비다. 이 사람 얘기에서 저 사람 얘기로 옮겨 다니다가 자리를 파하고 나면, 머릿속만 어지러워진다.




| 뒷담화를 하는 사람의 말로


직접 그 사람과 하는 대화에서조차 오해가 생길 수 있는 마당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받으면 오해는 당연히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성인이 되어서도 뒷담화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주로 불건전한 행실에 대한 뒷담이 많았는데 “걔가 옆팀 과장님이랑 바람 폈다더라”, "걔 인스타에 올린 거 봤어? 진짜 가식적이야" 하는 식이었다.


지인 중에 습관적으로 뒷담화와 여론몰이를 하는 사람이 있다. (지인 A라고 해두자) 그녀의 모습에서 정말 소름이 돋았던 것은, A가 예전에 가장 친했던 사람 B와 사이가 틀어지고난 후, B의 비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며 그 사람을 씹고 있는 모습이었다. A가 나와 내 친구에게도 B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 것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A는 나중에 우리 뒷담화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A에게는 깊은 얘기는 털어놓으면 안 되겠다."였다.





| 뒷담화에 대처하는 바람직한 자세


뒷담화를 아예 안 하고 살 수는 없다. 남에 대해 좋은 얘기만 하면서 무지개와 꽃밭에서만 뛰어놀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남에 대한 뒷담화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도 아니다. 어떤 특정 행동에 대해 서로 '이게 왜 옳지 않은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토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징어 다리 씹듯이 가벼운 안주거리로 '누가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하는 피상적인 대화는 궁극적으로 그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간의 관계에조차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작은 인간관계에 갇혀있던 학생 시절을 벗어나면서 모든 사람에게는 내가 모르는 각자의 사정이 있고, 그 행동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점차 배워나갔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관대함을 바라듯, 나 또한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좀 더 자비롭고 여유 있는 눈길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걔 진짜 이해 안 돼"라고 단정 짓기보다 이해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훈련하는 방향을 선택하기로 했다. 나에게 미운 점이 있듯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들만의 미운 점이 있을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게 사랑스러운 면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도 나에게 호의적일 것이라는 믿음이 마음속에 새싹처럼 피어나기 시작한다. 인생을 덜 적대적으로, 열리고 보다 밝은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작은 삶의 기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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